남북관계가 장기간 경색국면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어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3일 일정으로 방북했다. 현 회장은 금강산과 개성 관광 등 남북간 경협사업을 역점적으로 추진해온데다,지금 넉 달 반째 북에 억류중인 개성공단근로자 유모씨도 현대아산 직원이어서 이번 평양 방문길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현 회장도 출발에 앞서 "유씨 석방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장기 억류중이던 자국 기자 2명을 무사 귀환시킨 직후여서 유씨나 항로이탈했던 연안호의 선원들 문제가 뒤늦게나마 수월하게 풀리는 게 아니냐는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북한이 기존의 입장을 바꾼다는 공개적인 메시지나 태도가 변했다는 의미있는 징후는 아직 없고,북핵문제의 본질이 아직 그대로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북이 그간 보여준 행태를 감안할 때 성급한 기대나 막연한 낙관(樂觀)은 아직 이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회장의 이번 평양행은 단순히 남북 경협사업에 열성적인 기업인 개인의 방북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2차 핵실험을 거치기까지 고립화 속에서 대외적으로 강경일변도의 길을 걸어왔던 북한으로서는 대외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강도높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계속되는 등 대외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더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볼 수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게 미국 정부가 일관되게 천명(闡明)하는 원칙이지만 미국 기자들이 풀려나면서 양측의 관계개선에 걸림돌 하나가 제거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유씨 등도 무사 귀환하리란 기대는 클 수밖에 없고,나아가 현 회장의 방북에서 13개월째 중단된 금강산관광 재개문제 등도 충분히 협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정부 또한 근래 엄격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핵포기 의사와 함께 우리 국민들의 신변안전이 확인된다면 인도적 지원이나 남북경협사업의 정상화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현 회장의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