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원론에는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나온다. 바로 '세터리스 패러버스(ceteris paribus)'라는 표현이다. 이는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이다. 예를 들어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 수요가 증가하면 상품의 거래량은 늘고 가격은 올라간다.

또한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 공급이 감소하면 해당 상품의 거래량은 줄고 가격은 상승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분석과 예측에는 고려되지 않은 '다른 모든 조건'은 일정하다는 암묵적 조건이 포함돼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에 불변이라고 가정된 조건이 변한다면,그리고 그것도 급변한다면 예측은 이미 물 건너간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경제예측과 관련해 미스터 붐과 미스터 둠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영어에서 붐(boom)은 호황 내지는 잘나가는 상황을 의미한다. 반면 둠(doom)은 어둡고 힘든 상황을 뜻한다. 따라서 미스터 붐은 호황을 예견하는 분석가이고 미스터 둠은 불황 내지는 더 나빠진다는 분석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스터 붐과 미스터 둠 사이에 묘한 비대칭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아질 거라는 예측을 하는 경우 예측이 맞으면 그냥 족집게 분석가지만 틀리면 '틀려서 기분 나쁜' 예측이 된다. '좋아진다더니 이게 뭐냐'라는 짜증 어린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반면 나빠질 거라는 예측을 하는 경우 예측이 맞으면 예언자가 되고 틀리면 '틀려서 고마운' 예측이 된다. 더구나 남들이 다 좋아질거라고 할 때 안 좋아진다고 예측을 하고 나서 실제로 상황이 나빠지면 '용기 있고 지조 있는' 예언자라는 수식어까지 붙는다. 이렇게 보면 미스터 둠이 약간 더 유리한 측면이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경기를 보면 경기 회복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미스터 붐'이 조금 우세한 모습이다. 주지하다시피 경기지수에는 선행지수 동행지수 후행지수가 있다. 경기에 앞서는 대표적인 선행지수는 종합주가지수,자본재수주액,건설수주액 등이다. 동행지수는 경기와 함께 움직이는 전력 사용량이나 시멘트 소비량 같은 변수들이 포함돼 있다.

후행지수에는 경기의 움직임을 일정 기간 후에 따라가는 고용과 관련한 상용근로자 수나 회사채 수익률 같은 변수들이 있다. 현재 선행지수와 동행지수는 계속 좋아지고 있고 후행지수는 약간 불안하나 바닥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후행지수가 거의 바닥인 상태에서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회복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모든 예측은 기타 조건이 일정할 때를 전제로 한다. 일정하리라 믿었던 조건들이 바뀌면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그런데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적 환경,법적 환경,그리고 소비자의 심리적 환경 등일 것이다. 이들 환경조건이 급격히 나빠지고 악화되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예측은 물 건너간다.

임시국회에 야당이 등원하고 여야 간에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학생이 공부하러 학교 간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뉴스가 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기조차 하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니 다행이다. 이제 남은 기간 여야는 힘을 합쳐 미디어 관련 법들을 포함,제반 조건들을 개선시키되 최소한 이들 조건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장 상상하기 싫은 것은 '다른 모든 조건들'을 악화시키는 경우인데 이 또한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다는 면에서 걱정이 된다. 이번 국회가 혹시라도 예측된 범위를 벗어난 악성쇼크를 만들어 잠시 잠잠한 한국 경제의 '미스터 둠'들을 졸지에 '용기 있는 예언자'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고 진정으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 주기를 다시 한번 바라는 마음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ㆍ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