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인 '디지로그'란 말이 유행한 것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 냄새를 없애는 지나친 디지털화를 경계하자는 의식이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이 말을 화두로 제시했을 때 디지털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이 맹목적으로 치닫기보다는 거기에 아날로그적인 느림과 따뜻함을 담아야 한다는 선언적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디지로그만이 정답일 수는 없다. 때로는 아날로그에 디지털을 더함으로써 사람들이 꿈꾸는 편리한 세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삼성 센스 방송광고 '완벽한 노트북을 꿈꾸다' 편에서는 '아나털'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아나털이란 디지로그의 반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필자가 만들어 본 신조어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합성어다. 즉 아날로그에서 출발한 내용에 디지털 터치를 가함으로써 텍스트에서 제시하려는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아날로그에 디지털이 가세함으로써 사람 냄새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편리한 세상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광고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광고가 시작되면 모델 임수정이 노트북을 들고 있다. 노트북은 손에 꽉 잡히지 않은 채 약간 들떠 있는 듯하다. 잠시 후 장면이 바뀌면서 빨간색 종이비행기가 날아가고 '슈퍼 슬림'이라는 카피가 흐른다. 이는 노트북이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고 슬림하다는 장점을 표현한 것이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처럼 백마들이 쏜살 같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순간 '슈퍼 스피드'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곧 이어 모델이 손가락을 펴자 장미꽃이 화면의 여기저기에서 무더기로 피어나며 '슈퍼 스타일'이라고 강조된다. 마지막 장면에 '완벽한 노트북을 꿈꾸다. it 센스'라는 카피가 바짝 달라붙으며 임수정이 노트북을 잡자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광고가 끝난다.

이 광고에서는 디지털 기법을 쓰지 않았다면 비행기 날아가는 장면,백마가 질주하거나 장미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 광고는 욕망의 제조 공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광고를 통해 제시된 '아나털'은 욕망을 제조하는 또 다른 사회문화적 코드를 성공적으로 제시했다.

사실 이 광고에서는 한 편의 광고에서 하나의 포인트만을 강조해야 효과적이라는 광고 표현의 금과옥조를 무시했다. 다시 말해 노트북이 슬림하다거나 스피드가 있다거나 스타일이 좋다는 세 가지 포인트 중에서 하나만을 뽑아내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세 가지를 다 강조한 것이다. 완벽한 노트북을 꿈꾸다 보니 그렇게 표현했다고 해도 단일 메시지를 표현하지 못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광고 창작자들이 기본 상식에 해당되는 그런 원리를 몰랐을 리 없다. 다시 한번 광고를 살펴보니 그런 비판을 절묘하게 피해가는 구성을 하고 있었다. 즉,'슈퍼 슬림''슈퍼 스피드''슈퍼 스타일'이라는 카피에서 알 수 있듯,시옷으로 시작되는 두음(頭音)과 각운(脚韻)을 세 번 반복함으로써 마치 하나의 메시지인 듯 표현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조의 말(아날로그)로만 제시하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해 판타지 같은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날로그 구성에 디지털의 옷을 입혔다. 아날로그로만 표현했더라면 각각 세 가지 장점으로 느껴질 내용을 꽤 그럴듯한 디지털 기법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포장한 것이다.

아날로그의 한계를 디지털이 보완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아나털'의 면모를 구현해낸 셈이다. 디지로그보다 빼어난 아나털의 매력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 광고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