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산에 오른다. 길섶 진달래는 겨울을 보내고 작은 꽃봉오리를 키워 놓았다. 머지않아 꽃을 피울 것이다. 새삼스럽게 그 생명의 강인함에 놀라게 된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무들을 보며 감동하곤 한다. 특히 높은 산중턱이나 바위틈에 자리잡고 수분을 모아 나뭇가지와 잎으로 보내는 생명력을 보면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나무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제철에 맞춰 아름다운 꽃이나 푸른 잎을 만들어낸다. 나무는 그렇게 끊임없이 노고하면서 순환하는 계절과 조화를 이룬다.

세상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 이러한 순환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지구도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면서 질서정연하게 순환하고 있다. 세상의 이러한 움직임이 밤과 낮,그리고 계절을 만들어낸다. 또 질서 있는 순환을 만들어내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준다.

지금 세계경제도 순환의 한 변곡점을 지나는 과정일 수 있다. 그 주기가 어느 정도 크기인지,과정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금융시장의 위기가 시작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여파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으며,그동안 확고한 진리처럼 여겨졌던 경제원리와 정책들도 바뀌고 있다. 경제성장의 근간이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폐기되고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 신화에 카이로스라는 '기회의 신'이 있다. 앞쪽에는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지만 뒤쪽은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민둥머리로 그려진다. 기회를 잡으려고 미리 준비한 사람은 앞쪽의 늘어진 머리칼을 재빠르게 잡아챈다. 그러나 미처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뒤늦게 손을 내밀어도 민둥머리만 만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기회가 자신이 기회임을 밝히고 우리에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또 기회는 항상 변장술이 뛰어나서 미리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기회가 다녀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기회는 미리 준비한 자에게만 말 그대로 '기회'가 되는 것이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경제난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위기를 한꺼풀 벗기면 그 속에는 앞머리가 치렁치렁하고 뒷머리가 민둥머리인 기회라는 놈이 언제 세상으로 튀어나갈까 하는 장난스러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 순환하는 것이라면 기회는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경제는 언젠가는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고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앞에 다가올 기회를 잘 잡아챌 수 있도록 희망을 갖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마주칠 기회라는 놈을 선뜻 낚아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