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의 고층빌딩 사이나 주변을 지날 때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바람을 만나기 일쑤다. 고층빌딩 사이에서 몰아닥치는 거센 바람으로 간판이나 지붕이 날아가거나 유리창과 출입문이 파손되고 자동차가 전복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연기나 배기가스가 소용돌이 현상으로 인해 공기 중에 그대로 남으면서 대기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초고층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지역의 주민들은 배드민턴을 칠 수 없으며,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층빌딩에 부딪친 도심상공의 강한 바람이 지표면으로 급강하한 뒤 소용돌이처럼 위로 솟구치거나 좌우로 빠르게 변하는 현상을 흔히 '빌딩풍(building wind)' 또는 도시풍이라 부른다. 마릴린 먼로의 치마를 들춘 지하철 환기구 바람처럼,예기치 못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불어닥친다는 의미에서 '먼로풍'으로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심각한 기상이변 현상의 하나라 할 만하다. 기온이 낮은 고지대의 풍속이 기온이 높은 저지대보다 더 강한 게 정상인데도 도심 한복판에 부는 바람이 산간지역보다 더 센,'풍속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국내 대학의 연구팀이 최근 1년 동안 서울 강남 지역에서 자동계측 풍속계를 설치해 매일 초 단위로 풍속을 측정한 결과 이 지점의 바람이 해발 455m인 북한산 중턱보다 더 강한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태풍급에 해당하는 바람과 강풍의 횟수가 각각 21회,1453회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을 비롯 독일 영국 등은 수십년 전부터 '풍해 환경영향 평가'를 통해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건물 높이 100m 이상 되는 모든 건물을 대상으로 빌딩바람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는 마당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빌딩풍과 관련한 별다른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미 높이 163m 이상 초고층 빌딩이 전국적으로 25개에 이르고 있는데다,400m 이상 초고층 빌딩도 2016년까지 8곳이 선보일 계획이다. 빌딩이 높아지면 바람도 그만큼 세지고 예측 못할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도 커질 게 분명하다. 건물을 높이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먼로 풍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듯 싶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