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교수·공법학 >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논산훈련소를 다녀왔다.

이번엔 입영 장정의 부모로서.도대체 비장함과는 무관해 보이는 아들아이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은 감회(感懷)가 깊었다.

입소대대 연병장을 가득 메운,아무리 보아도 과연 군인이 되겠나 싶은 이들 젊은이들은 이제 몇 주만 지나면 의젓하고 늠름한 병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세상이 참 많이 달라진 것은 훈련소 주변 풍경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입대장병 환영'이란 플래카드를 내 건 식당들은 입대를 앞둔 아들들에게 당분간 꿈속에서밖에는 즐길 수 없을 고기를 먹여 보내려는 부모형제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자식을 2년 남짓 떠나보내는 부모들의 얼굴,표정들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아 보인다.

주관적인 감정이입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단한 일상을 접고 짬을 내 아들을 따라온 부모들은 여느 정치인이나 관료처럼 유별나게 애국적이지는 않을지라도,고마워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애국적으로 비쳐졌다.

훈련병들도 그다지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유사시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며 무릎, 팔꿈치가 까지며 눈물고개를 기어오르던 젊음의 기개가 우리의 오늘을 가져온 자양분이었을진대,우리 후배들 또한 그런 기개를 가지고 있을까.

싸워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와 사회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그러나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말자.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소식을 치르는 방식,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개방된 분위기,그리고 훈련소 부대원들의 친절한 처신,확실히 달라진 입영문화가 눈에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되짚어 본다.

우리에게 군은 무엇인가.

국가가 상비군을 가진 적은 이미 오래건만,군에 대한 우리의 인식(認識)은 놀라울 정도로 빈곤하다.

한국에 있어 군에 대한 인식은 군복무의 체험과 기억에 연관돼 형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군복무의 체험은 왠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회상되기도 하지만,개인에 따라서는 악몽에 가까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이 들고 난 뒤 어느날 배달된 징집영장에 절망하는 꿈은 이 땅의 모든 사내들이 한번쯤은 꾸었을 악몽일 것이다.

물론,군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비교적 긍정적 양상을 띠는 경우도 있다.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들의 심정이 바로 그런 예일 것이다.

요즈음 어머니들은 아들과 함께 군대를 간다.

매일 아들이 겪고 있을 훈련소의 일과를 점검하기도 한다.

제발 무사하기를,너무 고생하지 않기를 빌며 군에 기대를 걸고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그런 정서조차 시간이 가면 곧 휘발(揮發)되게 마련이다.

때문에 군에 대한 관심이나 기대는 대단히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

종종 총기난사 사고나 국방비리 등 부정적인 요소에 의해 왜곡되기도 한다.

한때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군을 반민주적인 지배권력 또는 비토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 배어 든 잘못된 군사문화의 청산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여전히,오늘날까지도 진행형의 숙제로 남아 있다.

반면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군이 겪어야 했던 권위의 실추,수모는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심각하다.

간혹 수해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 국군의 실재를 깨닫기도 하고,바람결에 들리는 자이툰 부대의 노고와 미담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민주화시대의 군이 겪어온 신뢰의 위기가 해소됐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서해교전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아직도 나라에 섭섭해 하며 울분을 토하고,'대추리의 굴욕'을 전해들은 군 원로들은 군의 사기 저하를 우려하며 탄식한다.

이제 우리 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다시 가다듬어야 할 때가 아닐까,가만히 생각해 본다.

험난한 이 위기의 시대에 국군의 존재이유는 확실하다.

강하고 믿음직한 국군의 존재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안정을 받쳐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지만,언제나 우리를 든든하게 하고,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핵심기능이다.

이 평범한,너무 당연해서 진부하기조차 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