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의 본고장 라스베이거스는 '어른들의 디즈니 월드'다.

에펠탑과 피라미드,베네치아식 곤돌라,해적선으로 꾸며진 호텔들이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는 테마이지만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그럴 듯하게 만들어낸 걸작들이다.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스티브 윈(Steve Wynn·64).그는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대표적 기업가다.

정확히 말하면 카지노 리조트 개발업자.'카지노 왕' '라스베이거스의 제왕'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린다.

그러나 가장 알맞은 별칭을 붙인다면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가 좋을 것 같다.

볼케이노(화산) 쇼로 유명한 미라지 호텔,분수 쇼가 압권인 벨라지오 호텔,해적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트레저 아일랜드(보물섬) 등을 만들어낸 주인공이기 때문.작년엔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윈라스베이거스 리조트를 탄생시켰다.

윈은 특히 라스베이거스를 단순한 '도박 도시'에서 '국민 관광지'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호 고갱 마티스 등 세계적 화가들의 진품을 사들여 호텔 내 갤러리에 전시하는가 하면 파리와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을 호텔에 유치하기도 했다.

도박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카지노와 술,화려한 쇼뿐이라는 상식을 파괴한 것이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라스베이거스는 본격적인 가족 관광지로 거듭나게 됐다.

미국 경영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스티브 윈의 재산은 총 18억달러로 미국 400대 부자 중 164위에 올랐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빙고 게임장과 도박 빚 20만달러를 동시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21세의 청년이 40년 만에 억만장자로 떵떵거리게 된 것이다.

윈은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이 도박과 관련된 사업이었던 것이 그의 인생 나침반을 조금 돌려놓았을 뿐이다.

그는 1967년 아내 엘렌과 함께 메릴랜드주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옮겨왔다.

빙고장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프런티어 호텔과 카지노 지분을 사들였다.

1970년대 초반 그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은행가 패리 토머스와 함께 시저스팰리스 호텔 토지 매입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를 통해 카지노장 골든너겟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70년대 말 그는 골든너겟의 연간 이익을 100만달러에서 1200만달러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꿈의 리조트 미라지를 짓는다.

당시 돈으로 4억4000만달러를 들여 객실 3000개 규모의 미라지를 건설했다.

호텔 안에다 숲을 만들고 밖에는 활화산을 설치해 이목을 끌었다.

90년대에는 트레저 아일랜드와 벨라지오를 지었다.

벨라지오에는 인공 호수를 호텔 앞에 만들고 실내 온실,미술품 갤러리,명품 숍을 들여놓았다.

벨라지오는 이후 최고급 카지노 호텔 건립의 효시가 됐다.

라스베이거스가 본격적으로 리노베이션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들 호텔을 본떠 뉴MGM 엑스칼리버 만달레이베이 등이 새로 지어졌다.

이 때문에 90년대에 라스베이거스 중심 거리는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동시에 라스베이거스 지역에서 수천 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내는 효과도 낳았다.

"내가 라스베이거스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명물을 건설하려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구촌 어디에서 카메롯 성과 피라미드가 연이어 있고 몬테카를로 옆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으며 로마제국과 이탈리아 호수가 붙어 있는 곳을 찾겠는가.

어떤 곳이든 여러분을 몰두하게 한다.

그리고 최고의 작품이 앞으로도 계속 출현할 것이다.

앞으로 5년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이다."

윈이 2000년 2월에 한 말이다.

마치 윈라스베이거스를 내다보고 한 말 같아서 그의 예지력이 섬뜩하기조차 하다.

그는 현재 중국 마카오와 중국 특별행정구에 카지노를 짓고 있다.

이름하여 윈마카오.오는 9월 개장할 예정이다.

아시아를 주목하는 안목도 역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들은 자신의 인생 역정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스토리를 실은 책 '러닝 스케어드(Running Scared:라스베이거스 카지노왕 스티브 윈의 삶과 격정의 시대)'가 1995년 발간되자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라스베이거스 법정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재미있는 점은 재판이 끝난 뒤 담당 판사의 남편이 윈의 회사에 고위직으로 채용된 사실이 밝혀졌다.

역시 '수완가(hustler)'란 평가를 들을 만하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