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7~29일 베이징에서 개최됐던 6자 회담에 대한 관전평은 각양각색이다. 미국 판정승을 주장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북한이 더 큰 덕을 보았다는 시각도 있다. 6자 회담 지속 가능론을 주장하는 낙관파가 있는가 하면 후속회담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원래 외교 협상은 서로 상충되는 국가 이익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모든 외교 협상은 동상이몽의 모순관계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동상이몽의 상충성을 최소화하고 상호 수용 가능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외교협상의 목적이 있다. 때문에 이번 6자 회담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늠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베이징 6자 회담의 실질적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은 처음부터 다분히 각기 다른 계산과 복안을 갖고 회담에 임했다. 미국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실질적 타결보다는 북핵의 선 해체 목표 달성을 위한 다자간 대북 압력 구도의 구축에 더 큰 역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북 압력 행사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 왔던 중국과 러시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회담 파국시 북핵 현안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는 명분을 쌓는 데 속셈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북한은 6자 회담 구도 내에서 미국과의 양자 접촉 기회를 가지고 종래 주장해 왔던 핵 포기와 안전보장의 동시 이행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북한은 최소한 중국 러시아,그리고 한국이 북한측 입장에 동조해 미국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중국이 북한을 6자 회담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동시 이행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이번 회담 결과에 내심 만족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핵 폐기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한 다자간 합의를 도출해 냈을 뿐 아니라, 북·중·러 북방 3각 연합구도의 와해라는 전술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강도 높은 협상자세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핵 보유국 선언과 핵 실험 착수 용의 등 도발적 발언을 유도해 냈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러한 북한측 태도에 대해 불편한 심사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의 파행적 이미지를 다시 한번 부각시켜 협상보다 압력으로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효과도 얻은 셈이다. 북한측 실망은 매우 큰 것 같다. 미국으로부터 동시 이행에 대한 어떠한 명확한 확약도 받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북한이 기대했던 중국과 러시아의 측면 지원이 예상보다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북측이 이번 회담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질타하며 더 이상 후속 회담에 관심과 기대가 없다고 표명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미국의 낙관론이나 북한의 비관론 모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점이다. 다자 압력구도에 대한 미국측 낙관론에 벌써 차질이 생기고 있다. 중국측 수석 대표로 참석했던 왕이는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적대적 대(對)북한 정책이 한반도 핵위기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측에 보다 전향적 입장을 취할 것을 주문했다. 러시아 역시 미국측에 북한의 안보 우려에 대한 이해 및 해소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한국도 한·미·일 3국 공조 틀에서 미국의 기본 입장을 지지하고 있지만,북측의 안보 우려 해소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정리를 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 역시 속단해서는 안된다. 미국도 체면이 있다. 단 한 번의 회담으로 입장을 바꾸기는 어렵다. 북한은 인내심을 갖고 전향적으로 후속 회담에 임할 때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 만에 하나 핵 실험 실시 등 강수를 두게 될 경우, 미국 강경파들의 획책에 말려들면서 북핵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6자 회담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 대안이다. 누구도 어렵게 만들어진 6자 회담의 판을 깨서는 안 된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면서 신중하고도 유연하게 후속회담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cimoo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