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6대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2월25일 취임한다. 대선 때의 교훈을 살펴보고,앞으로 남은 기간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짚어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 김대중 15대 대통령은 외환 위기의 와중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집권한 특수한 상황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무력화됐고,외국에서 새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당선자가 외환 위기 수습의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가 당선자가 국정의 전면에 나서면서 실질적인 대통령이 됐다. 이는 좋지 않은 선례다. 당선자는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끝까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도와줘야 했다. 노무현 당선자도 처음부터 위기의 한 복판에 서게 되었다. 북한 핵문제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현 정부와 북한 문제에 대해 의미있는 대화를 갖지 못한 지 오래돼 새 대통령과의 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또 그 동안의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 정부가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음이 드러남에 따라 세계는 북한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당선자를 주목하고 있다. 당선자는 이런 때일수록 사태에 바로 끌려 들어가지 말고,침착하게 문제를 분석해 해결책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비서관,외무부장관,통일부장관,국방부장관,국정원장 등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외교·안보팀을 가장 먼저 구성해 위기에 대한 해법 마련에 착수하고,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준비가 되면 사태의 긴급성에 비추어 취임 전이라도 본격 외교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특사 파견 등 외교행보에 나서면 신뢰를 떨어뜨려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당선자는 남은 기간 일반적인 국정에 간여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국정준비를 위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번 과도기에는 당선자가 처음부터 국정에 끌려들어 감으로써 집권 준비부족으로 정권 초기에 정책 혼란을 가져왔으며,이는 곧 정치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준비 기간에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중요한 자리의 인선 작업과 집권 후 대통령 자신의 업적으로 남기고자 하는 한 두 가지 프로그램의 선정과 실행 준비다. 각료와 청와대 보좌진 등의 인선은 취임 한달 전까지는 완료해 그들이 업무를 파악하고 할 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요 인선이 취임 직전에야 졸속으로 이루어지고,지역 안배 등의 이유로 발표 전날 밤에 사람이 바뀌기도 하는 관행은 국정 혼란의 원인이 되어왔다. 각료나 보좌진은 일하는 자리지,나눠먹는 자리가 아니다. 이들은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이 아니다. 대통령과 함께 임기 중 국정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팀의 일원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에 책임을 물어 각료를 바꾸는 관행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중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을 한 두 가지만 정해야 한다. 정치적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할 일을 남은 기간 충분히 준비해 가능하면 취임 6개월 이내에 실행해야 한다. 개혁적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고,이해 당사자들과의 타협이 불가피한데,대통령의 정치적 힘이 가장 강한 취임 초에 밀어붙이지 않으면 힘들다. 지난 번 정권 과도기에는 정권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지나쳤다. 인수위는 어디까지나 국정의 인수 인계 작업을 하고,정권 인수 뒤에 즉각 시행해야 할 일과 대통령의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번 인수위가 행한 국정 1백대 과제 선정 작업 등은 불필요한 활동이었다. 이런 일은 각료와 청와대 보좌진 등 중요한 자리의 진용이 짜여진 뒤에 그들이 소관 업무별로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정권교체가 정례화됐다. 당선자가 정권교체 과도기를 집권 준비를 위한 의미 있는 기간으로 활용해 집권 후의 혼란을 줄이는 전통도 정착되었으면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