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자기 나라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들의 지성이 다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래의 지성을 배출하는 영국대학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대학건물과 시설 장비들은 노쇠화하고 있고,교수들의 임금은 형편없이 낮다. 영국의 노벨상 수상자수는 70년대 13명,80년대 4명,90년대 2명으로 급감했다. 영국의 훌륭한 과학자,교수들은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대학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학이 바보만을 만들어 낸다고 혹평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10여년간 대학입시 부담을 덜어준다는 미명하에 입시제도를 느슨하게 한 결과 수학의 기초를 모르는 학생이 도쿄대 공학부에 입학하고,생물학을 배우지 않은 학생이 의학부에 입학할 정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국과 일본이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면,그 근본 원인은 바로 잘못된 대학교육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세계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최고수준의 대학제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문제점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초·중·고등 교육이 아니라 대학교육이 핵심이다. 초·중·고등 교육은 대학교육의 내용과 대학입시제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제도의 핵심경쟁력은 무엇인가? 바로 '경쟁'의 도입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입시생간의 경쟁보다 대학간의 경쟁이 더욱 심하다. 한편 한국에서는 대학입시생간의 경쟁은 치열하나 대학간의 경쟁은 거의 없다. 교육공급자인 대학 측면에서 한국은 독점,미국은 완전경쟁이다. 독점체제에서는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고 경쟁체제에서는 품질이 높아진다. 한국의 독점적 일류대학들은 학교명성에만 의존한채 엉성한 품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반면,미국대학들은 끊임없이 교육의 품질을 개선하고,일류대학으로 탈바꿈한다. 한국에 일류대학이 5개 정도 있다고 한다면,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하거나 나은 주립대학이 50개 주에서 1∼2개씩 있고,여기에 아이비리그 대학,기타 명문 사립대학 등을 포함하면 1백개가 훨씬 넘는다. 비율로 따져 우리보다 최소한 20배는 넘는다. 미국의 인구가 우리보다 5배 정도 많으니 인구수를 고려해도 4배는 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일류대학 들어가기가 미국의 경우보다 4배가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4명의 일류학생이 있을 때 미국에서는 4명 모두가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데 한국에서는 4명중 3명은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이 어렵건 쉽건 상관없다. 중·고등학교에서 전인교육을 시키건 말건,공교육을 내실화하고 많은 돈을 투자해도,어쨌든 4명중 3명은 떨어진다. 문제의 핵심은 초·중·고등 교육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일류대학이 적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한국 전체의 대학입학정원이 진학 희망자보다 많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진학 희망자는 어느 대학이냐를 따지지만 않는다면 모두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일류대학 진학을 원할 것이므로 한국대학의 총정원,총입시생수는 의미가 없다. 일류대학이 문제다. 어떻게 하면 일류대학을 늘릴 수 있는가? 해답은 정말로 간단하다. 대학의 정원과 운영을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잘되는 일류대학은 정원을 늘리고,잘 안되는 대학은 정원을 줄일 것이다. 경쟁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일류대학들이 등장할 것이다. 일류대학의 숫자와 정원이 모두 늘어날 것이다. 정원을 늘리면 학생들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엄격한 학사관리로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각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좋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엊그제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재학생의 평균성적이 재수생보다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학력이 점차로 저하된다는 얘기다. 잘못된 입시제도에 따른 잘못된 교육의 결과다.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우리의 대학이 일류로 가르치고 일류학생들에게 문호가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야 초·중·고등 교육이 그에 맞게 따라 올 것이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