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에 5대의 다코타(미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의 레저용 픽업트럭)가 들어온 지난주 초부터 재정경제부 세제실은 부쩍 바빠졌다. 20일 새벽 6시 요르단 출장에서 돌아온 최경수 세제실장은 곧바로 출근했고 관련부처와의 마라톤회의가 벌어졌다. 쟁점은 승용차인 다코타에 특별소비세를 부과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정부는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길을 택했다. 22일 발표된 '특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부처별로 다른 승용차 판정 기준을 통일시켜 다코타를 특소세 부과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렇게 되자 불과 한달 전에 최 실장 자신이 "길가는 사람에게 다 물어봐라.그 차는 화물차가 아니라 승용차다"라고 지적했던 쌍용 무쏘스포츠도 특소세 부과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당연히 특소세를 물고 무쏘스포츠를 산 구입자들 사이에서 '일관성 없는 조세정책'에 대한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더구나 워싱턴에서 한·미 통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와중에 이런 결정이 나와 "역시 한국 세법은 통상압력에 약한 '유리 세법'"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안으로는 업계와 소비자들의 비난을 사고,밖으로는 '한국은 찍어누르면 세법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나라'라는 웃음거리를 자초하고 말았다. 정부가 이런 망신을 피할 기회는 많았다. "무쏘스포츠 같이 승용차인지,화물차인지 분간하기 힘든 하이브리드형 자동차들이 나온지 얼마 안됐다. 그래서 무쏘스포츠 판정 이후 법 개정작업에 들어갔다"는 게 재경부 설명이다. 그러나 이미 무쏘스포츠와 비슷한 사양의 다코타가 작년 3월에 수입·통관된 적이 있다. 이때 세관이나 재경부가 조금만 신경썼더라도 이런 사태는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일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밀어붙이기 특소세 면세 압력에 정부가 무릎을 꿇은 굴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압력의 단초는 새 차가 나오자 한 쪽에선 '화물차',다른 쪽에선 '승용차'라고 판정할 정도로 '뒤죽박죽'인 법 체계를 그대로 방치한 채 시장위에만 군림하려던 정부 자신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되겠다. 박수진 경제부 정책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