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이런 말을 했다.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한번은 희극으로 끝난다"고.최근 외환은행장 교체를 둘러싼 모습처럼 이 말에 들어맞는 일도 없는 듯하다. 지난 2000년 2월 이갑현 당시 외환은행장은 경영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기를 1년반 남겨둔 상태였다. 대주주였던 정부의 뜻에 따라서다. 후임 행장으론 모 금융감독원 간부가 거론됐었다.하지만 노조 반발을 의식한 정부는 김경림 당시 부산은행장을 낙점했다. 이 과정에서 외환은행은 1개월동안 행장없이 떠돌았다. 비극이었다. 2002년 3월.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김 행장이 지난 11일 임기를 1년 남기고 사의를 밝혔다. "경영상태가 호전됐으니 이젠 쉬고 싶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이번 중도퇴진 역시 금융당국 고위간부를 행장으로 내보내기 위한 정부의 입김 때문이란 게 금융계의 정설이다. 더욱이 정부가 얼마나 급박하게 몰아붙였던지 3월말 정기 주총을 불과 2주일 남겨둔 상태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다. 외환은행은 새 행장 확정 때까지 각종 절차에 최소한 한달 보름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영권 공백상황이 불가피해졌다. 금융당국의 '고위관료 은행장 만들기' 장난에 시중은행의 경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서글픈,그러나 웃기는' 희극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부관계자들이 "정부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은행장 선임에 관한 한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뻔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위성복 조흥은행장의 연임불가론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공적자금 투입기관장에 대한 연임불가론은 원칙없는 잣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역시 공적자금이 들어간 서울보증보험의 박해춘 사장은 지난해 말 연임했다. 당시 정부측은 "시장의 평가가 좋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가 조흥은행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시장의 평가'란 게 '정부의 입맛'과 동의어인 모양이다. 현 정부가 외쳐온 관치금융 철폐는 어느새 헛구호가 돼버렸다. 왜곡된 역사가 두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번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김준현 경제부 금융팀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