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지구화(全地球化)''는 기회이기보다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지난 1997년 한국경제는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함께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우리 국민들은 이 환란(換亂)이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전지구화 현상''에 의해 초래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전지구화에 대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 정서가 강하다. 전지구화 현상은 헤게모니를 다투는 일부 선진국들과 이익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 건물이 피랍된 여객기에 의해 공격받아 4천여명의 사망자를 낸 ''9·11 테러 대참사''도 미국 중심의 급격한 전지구화 확산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전지구화는 ''정보화와 탈(脫)근대주의 확산에 의해 구조적으로 전개되는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지구화라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대두하게 된 동인(動因)이 무엇이든,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국가들''은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개방화에 따르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한편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대륙차원에서는 하나의 시장을 지향하여 강력한 경제공동체를 이룩한 유럽연합(EU)처럼 동아시아 국가들도 긴밀히 협력해 전지구화에 대한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지구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s)''를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도입해 원만하게 정착하기까지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현존하는 제도들이 빚어내는 ''경로 의존성(path-dependency)''문제다. 관료제를 비롯한 여러 제도들은 ''유기체''처럼 스스로 생존하려는 특성이 있어 ''관성의 법칙''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로 인해 제도적 문화적 지속성에서 과감하게 탈피·변신하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더러는 ''혁명적인 변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혁명은 중국이 1966∼76년의 ''문혁''때 치렀던 것처럼 막대한 희생과 비용을 수반한다. ''과거와의 단절''이란,또 맥아더 점령군 하의 일본 개혁에서 보듯이 ''해내지 않으면 안될 과제''라고 해도 계획한 대로 이루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망해야 산다''는 역설(逆說)대로 시장에 방임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렇듯 바꾸기 어려운 기존의 제도 및 문화적 특성을 ''조용하고 내실 있게 변화시키는 방법''이 바로 ''정합성을 고려한 개혁''이다. 변화된 환경에 잘 맞도록 공사(公私)부문의 제도를 정합성에 따라 재설계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다. 둘째,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이 파생시키는 ''불평등의 심화''문제다. ''하나의 세계시장''을 지향하는 전지구화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계되어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지구화는 잘사는 20%와 못사는 80%로 나눠진다는 이른바 ''20대80의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기존의 불평등을 보다 악화시킬 것은 분명하다. 환란 이후 IMF(국제통화기금) 지침에 따라 추진한 구조조정에 의해 우리 사회는 이미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 각 부문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해 투명성과 책임성,그리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면 지금까지 있던 여러 ''불공정 게임규칙''들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절차적 공정성의 증대가 반드시 결과로서의 공정한 배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는 일과 ''참을 만한 수준''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국내적 합의를 민주적으로 도출하는 일 사이에 잠재적인 갈등 구조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전지구적으로 생각하되, 국내적으로 행동(Think globally,act locally)''하거나,''국내적으로 생각하되,전지구적으로 행동(Think locally,act globally)''하는 것이 전지구화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응방법이 될 것이다. ydjung@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