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정부청사 한 가운데 자리잡은 재정경제부는 요즘 분위기가 무척 밝다. 감사원이 공적자금 감사 결과를 발표했던 지난달 29일 '초상집' 같았던 모습과 완전 딴판이다. 공적자금 관리 잘못에 따른 '위기국면'을 쉽사리 벗어난 덕분이다. 기자를 만날 때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지요"라고 물어오는 관료들이 많아졌다. 재경관료들이 '한 고비'를 넘겼다고 희색만면인 이유는 무엇일까. 공적자금 부실 운영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던 야당이 검찰총장 탄핵안 때문에 전선을 분산시킨 데다 이달 들어 증시가 폭등세를 보이는 등 '호재'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1.8%에 달했다는 최근의 통계숫자도 재경관료들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재경부는 일단 표면적으론 경기 회복론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섣불리 낙관론에 장단을 맞췄다가 경기가 다시 고꾸라지면 비난의 화살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본능적' 판단 때문이다. 진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10일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 출석해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내년 하반기부터 가능할 전망"이라고 운을 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게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이제서야 주가가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A국장)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건 두 차례에 걸친 재정확대 덕분"(B국장)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강조한다. 재경 관료들의 '배짱 편해진 모습'은 내년 예산 요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진 부총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기부양을 위해 내년중 5조원의 추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최근 그런 말이 쑥 들어갔다. 한 관계자는 "가능하면 추가로 얻었으면 하지만 다급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재경 관료들의 이런 '태평가(太平歌)'에 대한 경고일까. 10일 증권시장은 외국인들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경제운영의 최전선에 서있는 공무원들이 당장의 상황 전개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묵묵하고 뚝심있게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습이 아쉽다. 김수언 경제부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