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금감위원장이 6일 은행장들을 불러 모았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지방은행을 대표한 부산은행 등 17개 은행대표들이 이른 아침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에 '집합'했다. 금감위원장과 전체 은행장들의 간담회는 근 6개월 만이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이날 이 위원장은 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사안들을 언급했다.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 추진현황에다 향후과제,부실기업에 대한 상시평가시스템 정착,금융소프트웨어 개혁,여신관행 개선,회사채 시장 활성화 등등. 당국의 정책에 대한 설명도 있었지만 상당부분은 이 위원장이 '당부'하거나 '요청'한 민감한 내용들이었다. 받아들이는 처지에서는 '촉구'나 '압박'으로 느낄 만한 사안들. 그의 지적대로 기업대출은 계속 줄이면서 손쉬운 가계대출만 늘려가는 은행의 몸사리기 영업전략은 감독당국 총책임자로서 한번쯤 짚고 갈 만한 사안이기도 했다. 신용대출에 적극 나서라는 채근만 해도 그렇다. 문제는 은행장들을 끌어모아 금융정책을 설명하고 특정 부문에 대한 은행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 자칫 또다른 '관치금융'으로 발전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가 끝나자마자 각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연말까지 기업대출을 1조원씩 늘려보겠다"는 요지의 자금운용 계획을 앞다투어 발표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은행들이 연말까지 약속한 대출금액은 놀랍게도 11조원. 올들어 지금까지 대출한 9조원보다도 많았다.금감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만들어낸 마술같은 결과였다. 금융감독원장을 겸임하는 이 위원장의 첫째 임무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시감독하는 것일 게다. 회사채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고 불필요한 신용경색을 차단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금감위보다는 재정경제부에 속한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상시평가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고 부실채권도 조기에 정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시에 기업대출 활성화를 역설한 것은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겠다. 허원순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