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로 시장에서 변칙 플레이를 하는 사례가 많다면 당연히 룰을 새로 정해야죠"(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 A위원) "기업의 자금조달 활동에 제약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규제완화의 취지에도 역행하는 겁니다"(증선위 비상임 B위원) 최근 열린 증선위·금융감독위원회 합동 간담회에선 이 같은 설전이 벌어졌다. 해외 전환사채(CB)의 전환가격조정(refixing)을 제한하는 규정 개정안을 놓고 위원들의 의견이 날카롭게 맞섰다. 간담회에 부쳐진 안건은 '유가증권 발행 규정 개정안'.개정안은 연 4회로 정해진 현행 전환가격 조정 횟수를 연 2회로 제한했다.전환가격 조정폭도 발행당시 정한 전환가격에서 4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 등으로 해외CB를 주가조작에 편법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자 금감원이 이 같은 대책을 내놓았다. 전환가격을 제멋대로 낮춰 특혜를 주는 편법을 막자는 취지다. 산업은행이 삼애인더스의 해외CB를 대량으로 인수해 물의를 빚은 터였다. 수많은 코스닥기업이 해외CB를 악용해 온 것도 시장을 불투명하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됐다. 당연히 제도개선 요구도 빗발쳤다. 금감원도 다급해졌다. 그러나 결론은 '외양간은 고치되 도둑이 마음껏 뛰어 놀도록 문을 열어 두자'는 격이 되고 말았다. 개정안을 무기한 보류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외환자유화의 흐름을 감안하고 기업의 자금조달 활동을 위축시키지 말아야 한다"며 사실상 전환가격 조정제한을 백지화했다.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도둑(작전세력 또는 거짓 외자유치 기업)이 여기저기 뛰어 다닐 수 있도록 눈을 감은 셈이다. 자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감독당국의 수장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이야말로 정말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없다. 전환가격을 제멋대로 조정해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상관없이 인수자가 이익을 챙길 수 있는,그래서 기존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무위험 CB가 시장에 버젓이 나돌아도 좋다는 뜻일까. 말 못할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최명수 증권부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