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표 <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그동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이었던 대우사태가 지난주 큰 고비를
넘겼다.

한경 24일자 보도대로 대우 외채 48억달러를 평균 40%수준의 값으로 국내
채권단이 사들이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2월초까지 해외채권단 운영위와 40% 상환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세부적인 채무조정계약에 대한 협의가 이뤄진다.

2월 중순까지는 채권기관과 채무자인 대우가 채무조정방안에 대해
제안하기로 했다.

해외 채권기관이 이를 최종 승인할지 여부는 3월 중순까지 결정된다.

만약 승인되면 주채권은행이 주로 출자하는 특수목적법인이 대우 외채를
인수하도록 스케줄이 잡혔다.

이로써 대우라는 실체는 지속적으로 인정되게 됐다.

대우와 거래하던 수많은 중소기업들도 하루 아침에 거래관계가 파탄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물론 대우의 모든 해외채권자들이 이번 합의에 완전히 동의한 것은 아니다.

몇년후 대우가 정상화되면 채권의 40% 이상을 회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는 채권자들도 있을 것이다.

주요 해외 채권자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채권자와의 합의엔 실패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또 이번 합의내용에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채권의 40%"수준이 적정하느냐다.

더 나아가 한경에서 지적한 대로 국내 채권자에게도 그와 동등한 대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40%가 적정치 이상이라면 국내채권자가 그 차이만큼 손해를 봐야 한다.

국내 채권자에게도 해외채권자와 똑같은 대우를 해주기로 한다면 결국
특수목적법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둘다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경은 이같은 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다뤄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제시하지 못했다.

중요한 문제이니 계속 관심을 갖고 기사화하기 바란다.

지난 27일자 1면 톱으로 다룬 "시중자금 급속 부동화"기사는 한국경제에
대한 장밋빛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의적절한 기사였다.

지난 해 우리경제는 고성장, 물가안정, 경상수지흑자, 낮은 이자율 등
나무랄 데 없는 성적표를 냈다.

그러나 그같은 결과가 계속되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동안의 주름살과 각종 개혁조치 강행에 따른 피로현상이 조만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는 인플레이션과 이자율 상승으로 표출될 공산이 크다.

그에 따라 주가하락이나 자금의 단기 부동화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총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책당국이 그런 부작용 예방에
소극적이란 것이다.

한경은 계속 이 점을 주시하며 더욱 심층적인 기사를 다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 속의 조그만 나라다.

때문에 세계경제 속에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경제는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 국가의 경제상황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런 점에서 한경이 25일자에 미국과 일본의 부채문제를 다룬 이코노미스트
지 기사를 요약 전재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내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의 극심한 재정적자 문제는 특히 미국 관변 학자들에 의해 제법
알려졌다.

그러나 10년 이상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의 부채문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1980년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이었다.

그러나 1990년엔 세계 최대의 순채무국으로 전락했다.

그 이후에도 10년간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미국이 외국에 지고 있는 빚은 현재 2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갖고 세계경제를 위협할 규모다.

그나마 80년대 말엔 미국 부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신경제로 그런 논의조차 시들해졌다.

소련 붕괴 이후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로 인식된 미국엔 돈이 몰렸고
미국은 그 돈의 일부를 다른 나라에 빌려줬다.

미국이 분에 넘치는 위상을 갖고 "세계의 은행" 역할을 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정상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그린스펀과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해왔듯이 미국 경제는 이상주가로 많은 문제들이 가려져
있다.

거품은 꺼지게 마련이다.

지금도 미국 가계의 빚은 가공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한다.

주가가 올라가면 그 주식을 팔아 기왕의 부채를 줄여나가는 게 기업의
정상적 행태다.

그런데 현재 미국기업들은 반대로 부채를 계속 늘려 주식을 사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일부에선 스톡옵션을 받은 미국의 경영자들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관행은 무참하게 비판 받았다.

이때 미국의 관행은 아주 정상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었던가.

금융은 항시 변하는 것이고 미국금융도 수많은 문제, 그 정도에 있어
우리보다 세계경제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경제의 이코노미스트 기사 전재는 그런 점에서 더욱 돋보이는 것이었다.

< chonpyo@plaza.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