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세 개로 나눠 보자.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 종교와 영혼이 있는 정신의 세계, 자연
즉 물질의 세계가 있다.

첫 밀레니엄엔 기독교 등 영혼의 세계가 발전했다.

그 다음 천년엔 인간과 자연에 관계된 세계가 많이 변화했다.

자연과 어떤 관계를 이루느냐는 곧 인류발전의 단계가 됐다.

자연에 순응하던 시기를 지나 정복하는 시대로 이어진 것이다.

자연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것.

자연을 이해하고 정복한 시대가 지난 밀레니엄이었다.

그 정복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과학과 기술이다.

인간은 속성상 필연적으로 무엇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도구를 사용하는 점이 동물과 차별화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려는 움직임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 호기심은 과학을 낳았다.

또 어떻게 만들어햐 하는 방법이 기술을 만들어냈다.

지난 천년 동안은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과학과 이를 응용하는 기술이 잘
접목됐다.

더욱 지혜롭고 편리한 도구들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만에 획기적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도구의 역사속에 가장 큰 사건의 하나는 산업혁명이다.

이 시대부터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하게 됐다.

이제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오고 있는 큰 물결은 정보화혁명이다.

지능화된 기계가 정신노동을 대신해준다.

이런 새 흐름을 잡기 위한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 된다.

IMF관리체제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도구를 갖는 능력이 선진국들에 비해
뒤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변화에 낙오한 민족이나 국가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물결"이란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비참한 결과"
가 그 답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대부분 식민지 국가로 전락한 아시아 국가들은 산업발전
이라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질 수 있을까.

먼저 기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기술과 경제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기술은 큰 틀을 만드는 것이다.

경제는 그 틀을 알차게 만들어 주는 기능을 한다.

기술은 경제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컨대 비행기라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화가 있으려면 먼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당장의 경제적인 측면만 중요시하고 그 원천이 되는 과학기술을
소홀히 해서는 진정한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크고 멀게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임진왜란과 합일합방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서구에서 총포기술을 받아들인 일본은 1592년 조선을 침략했다.

화살과 총의 대결이니 싸움이 될리가 없다.

단 20여일만에 수도인 서울이 점령되는 수모를 겪었다.

합일합방도 마찬가지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된 일본은 한국을 중국침략의 길목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IMF 관리체제를 오게 한 외환위기도 깊은 속 사정을 알고 보면 정보화기술에
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지 못한 도구(기술)를 다른 나라들은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경제학자들은 가격을 먼저 따져왔다.

하지만 기술을 아는 사람들은 품질을 생각한다.

근본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면 후자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환율 등을 조절해 가격경쟁력만을 키우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근시안적 사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싼 값에 잘 팔려 외화를 벌어들이는 상품으로는 한국경제를 다시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대로 된 과학기술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과 통찰을 가진 지도자도 절실히 필요하다.

국가 지도층의 안목과 마인드가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기본이다.

그런 지도자가 없는 나라는 불행하다.

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찾아 뜰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따라주며 연구원들을
격려하던 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모범이 됐다.

국가 정책에서도 개혁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식을 조금씩이라도 바꾸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 국민에게 진정어린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안일한 정책으로는 결실을 보기 힘들다.

정책과정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의 틀과 관행을 너무 따른다는
점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도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공학교육뿐만 아니라 대학교육 전체가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

교육이 과학기술의 빠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적자원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것 또한 빠뜨려서는 안 된다.

새 천년엔 과학기술이라는 도구를 쓸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지적 능력을
높이도록 힘쓰자.

< kangbg@dogsuri.hoseo.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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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화학공학과
<>캐나다 워털루대 고분자공학 박사
<>한국화학연구소장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