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에 집필하고 있는 연재소설의 소재발굴 때문에 지방 5일장 취재
여행길에 오르는 기회가 많아졌다.

지방 읍내의 5일장시의 장터는 우리가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금과 같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황에도 예상밖의 활기를 보이는 가운데
명맥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

장터와 인접했거나 혹은 나란한 길가에는 외관이 현란하게 과장되고 골격도
우뚝한 대형 마트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이들 대형 점포에서는 저가의 일용잡화와 먹거리를 공급하면서 요란한 판촉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5일장을 드나들었던 관습에 젖어 있는 대다수의 시골
장꾼들은 대형 마트의 시끌벅적한 판촉활동에 좀처럼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

비새고 녹슬어서 허름한 장옥 그늘 아래 쪼그리고 앉은 채소전의 안면있는
노파들을 찾거나 목소리가 걸쭉한 어물상인과 흥정하기를 선호한다.

사소한 향주머니 한 개 사는 일조차 장거리 리어커의 노점상 상대하기를
즐기는 듯하다.

그래서 5일장의 정서는 제도적인 혹은 발빠르게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정서
변화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모름지기 우리 옛 장터의 풍속도를 훼손없이 유지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5일장터에도 변화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변화의 현상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른바 아직 다리에 핏기가
마르지 않은 젊은 새내기 노점상들의 수효가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다는
것과 좌판에 널린 물건을 몽땅 처분하더라도 총액 10여만원에 불과할 것
같은 보따리 노점상인들도 한결같이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이 시골장터의 노점상으로 유입되는 현상은 우리경제의 골깊은
주름살로 볼 때 이해가 가능하고 후자의 경우는 우리생활의 풍속도가 급격한
속도로 변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직 하다.

그런 변화의 현상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방 행정기관들이나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5일장에 대한 열성적인 관심과 헌신적인 태도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영암읍내나 고흥군의 동봉항에도 5일장의 장터를 알리는
번듯한 도로표지판까지 게시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양양읍에서는 장날이 되면 농협직원들이 장터의 골목을
돌면서 노점상들에게 잔돈을 바꿔 주고 장서는 날이 일요일인 경우 우체국
직원이 장터에 책상을 벌려놓고 시골 장꾼들의 우편물을 접수해주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이나 전라남도 여수시나 구례군청에 들려서 그 지방 특산물
을 소개한 팸플릿 자료를 요청해 보면, 그 격세지감에 놀라게 된다.

민원인을 맞이하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친절하고 적극적
이기 때문이다.

낯선 고장에 떨어진 민원인들이 공무원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처음 찾아가게
되는 곳이 응당 군청의 민원봉사실 같은 곳이 되겠는데, 그 곳에 가서 찾아온
사연을 얘기하면 해당 공무원은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얘기
를 경청한 뒤 민원인이 찾아가야 할 해당부서까지 손수 안내해 준다.

뿐만 아니라 민원인이 바라고 있는 업무내용을 해당 부서의 해당 공무원에게
소상하게 주지시켜 민원인이 신속하게 업무를 마치고 지체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한다.

요사이 지방 관공서를 찾아 가면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 공무원들로
부터 예상외의 접대나 친절과 마주치게 되면서 우리도 어느덧 이만치 왔구나
하는 자긍심에 공연히 우쭐해진다.

지방자치제를 한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효율성이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줄 안다.

정부가 하겠다니 그렇게 하는가 보다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마주치고 부대껴온 공무원들의 정형은 불친절과 발빼기,
뒤로 미루기와 떠넘기기, 혹은 턱짓으로 가리키기 같은 부정적인 인식들이
전부였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가장 절실하게 찾아가야 할 곳이 관공서였으면서도 가장 가기
싫은 곳이 관공서가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공무원들의 몸가짐이 시쳇말로 3백60도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들 공무원들의 수효를 감축한다고 한다.

아쉽고 서운하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들의 수효를 줄이는 것만이 과연 구조조정의 핵심 과제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대폭 줄여야할 것은 이제 와선 정치적 부가가치조차 희박해진 것으로
회자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수효가 아닐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