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식품매장에 "그린음악오이"가 등장해 주부들의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이 오이는 일반 오이에 비해 모양이 예쁘고 통통하다.

겉모양만 그런게 아니다.

실제 이 오이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예사 오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인체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성분이 일반 오이의 2배정도이다.

수확량도 일반 오이보다 20%정도 많다.

어떻게 해서 이같은 일이 가능할까.

재배한 농민은 이를 "그린음악"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을 이용해 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

비과학적으로 들리는 이같은 얘기가 실제 생활에서 다양하게 실험되고 있다.

모짜르트 음악을 들려줘 젖소의 우유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든지, 농작물의
발육 촉진에 음악요법이 효과적이라든지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식물의 성장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그린음악"이 등장해
화제를 낳고 있다.

과연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일까.

<> 식물도 음악을 듣나 =음악요법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한다.

가령 식물체에 전류계를 연결해 놓고 음악을 들려주면 전류의 변화가 크게
나타난다.

음악을 끄면 반응이 가라앉긴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사람이 감동적인 음악을 듣고나서 한동안 여운이 남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반응은 식물의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오이 배추 양란
미나리 등은 비교적 반응정도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대해 기존 과학계에서는 "단순히 음악이 파장의 형태로 전해지는
것 뿐이지 식물이 음악을 바람소리와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
한다.

<> 그린음악이란 =음악요법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미국의 델 칼슨 박사이다.

그는 80년대 소닉 블룸(Sonic Bloom)을 개발해 이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촉진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닉 블룸은 비발디의 사계 등 서양의 클래식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비해 그린음악(Green Music)은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
곤충자원과장인 이완주 박사가 지난 93년 개발한 것이다.

물소리 새소리 가축울음등 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한 명랑한 동요풍 음악
이다.

이 박사는 "소닉 블룸은 6천헤르쯔(Hz) 고음의 인조 새소리가 배경에 깔려
듣기에 부담스럽지만 그린음악은 최고 2천Hz에 그치는 자연음이 바탕이어서
듣는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농촌에서는 아직도 모를 낸 후 들판에서 신나게 풍악을 울리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다.

"이는 단지 곡식을 잘 돌봐 주라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뜻만은 아니다.
소리로 식물과 교감해 생육을 촉진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깊은 지혜가 숨어
있었던 것"이라는게 이완주 박사의 설명이다.

따라서 식물에도 기가 있다는게 그의 주장.

이같은 원리를 응용한 것이 바로 "그린음악"이다.

<> 그린음악의 원리와 효과 =이 박사가 주장하는 음악요법의 원리는 이렇다.

음악이 울리면 공기를 타고 음파가 식물의 몸에 닿는다.

세포벽에 닿은 음파는 벽을 떨게 하고 그 떨림은 액체로 채워진 세포질로
이동한다.

이것은 안마를 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 결과 세포질은 활성을 얻어 신진대사가 촉진된다.

그리고 잎뒤에 있는 숨구멍이 많이 열려 가스교환이 활발해진다.

또 잎에 뿌려준 비료의 흡수가 촉진돼 에너지를 간직하는 ATP란 성분이
많이 생긴다.

양분을 만들어주는 엽록소도 많아진다.

이완주 박사는 "채소나 꽃들이 단잠에서 깨어나는 아침 7~10시 사이에
2시간정도 매일 이 음악을 틀어주면 건강한 작물로 탈바꿈한다"고 말한다.

이 박사가 말하는 그린음악 작물의 특성은 우선 수확량이 많다는 것.

해충도 눈에 띄게 준다.

인체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주는 루틴(Rutin)과 가바(GABA)란 성분은 일반
작물의 2배를 웃돈다고 한다.

실제 경기도 오산농협의 조사결과 그린음악으로 오이농사를 짓는 농가의
평당 오이수량이 일반 농가보다 23%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배기간(4~5개월)중 살충제 살포횟수도 5회에서 1회로 줄었는데도 해충
으로 인한 피해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완주 박사는 "올해의 경우 6백여개 농가에서 그린음악으로 채소나 꽃들을
키울 만큼 친환경농업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 그린음악에 대한 반론 =기존 과학계에서는 음악요법을 일종의 의사과학
(pseudo-science)으로 바라본다.

한국의사과학문제연구소 강건일 박사는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설사 실험과정에서 입증
됐다 하더라도 이 실험 자체가 변수를 적절히 통제한 상태에서 객관적인
실험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이 간다"고 말했다.

다시말해 식물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확인된 실험결과가 오차범위에 드는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날 수도 있다는게 강 박사의 설명이다.

< 강창동 기자 cd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