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분야의 권위자인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경제에
내리는 진단은 냉엄하다.

과거 고도성장에 뜰떠 있던 한국의 실상은 "우물안 개구리"에 다름
아니었다는게 그의 시각이다.

그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금융과 기업뿐 아니라 정치 및 사회.문화적
부실이 몰고온 합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또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의 조기탈출은 가능하지도 않고 설사 이를
벗어난다해도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올수 있다고 들려준다.

김 교수는 요즘 개혁과 반개혁을 분배의 균형이란 잣대로 구분하려는 경향
을 경계한다.

특히 정치적 편의주의가 경제효율성을 압도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소득을 나누기보다는 다시 늘리는 방향으로 경제운영의 가닥을 잡아
나가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걸맞는 "경제효율성"을 갖추는 것만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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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한국경제 ]]]

국제통화기금(IMF) 지원금융의 충격이후 거의 1년 가까이 경과한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근본문제를 밝히고 한국경제의 내일을 전망해 보기로 하자.

당면한 경제위기를 파고들면 외환 유동성부족 위기, 금융부문 위기,
기업경영 및 노동시장 위기, 정치권 위기 그리고 사회문화 가치의 위기가
차례로 맞물고 있는 다중적 위기구조를 만나게 된다.

위기의 실상을 다중적 구조로 파악하고 이를 시정하는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은 장기간 노력을 각오하게 된다.

"IMF 조기졸업"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도 그 결과는 공허하다.

먼저 경제주체들이 시야를 넓혀 밖에서 우리 위상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우선 고립국으로는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나라사이의 상호 의존관계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부존자원 조건과 시장의 필요성이 국제관계의 심화를 요청하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한국적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통했던 시대는 사라졌다.

다음으로 중요한 인식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비중이다.

한국은 G7 국가는 물론 중국과 인도와 다르다.

인구와 국토의 크기, 핵무기 보유 등으로 미루어 비중이 낮다.

이스라엘처럼 소수 민족이면서도 국제 금융시장과 언론매체의 장악력이
돋보이는 나라도 아니다.

덴마크처럼 소국이면서 국제사회에서 높은 신인도를 누리는 나라도 아니다.

우리가 북한을 저평가하듯이, 선진국 관점에서는 한국과 북한의 평판이
낮기는 오십보 백보다.

다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 지난날 고도성장의 실적 때문에 그나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얼마간 돋보였을 따름이다.

무겁게도 가볍게도 다루기 곤란한 어중간한 비중의 나라로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질서는 아직도 약육강식의 밀림질서다운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다는 냉엄한 사실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에도 강대국과의 쌍무관계가 국제무역의
흐름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흐름을 결정하는 국제금융시장은 국제금융기구나
각국의 중앙은행의 통제 밖에서 움직이고 있으나 이를 적절히 규제할 규범
이나 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며칠전 G7 재무장관회의에서 국제금융위기의 해소방안이 논의되었고, 곧이어
개최된 확대(G26) 회의에 한국도 참여했다.

신흥 경제권의 국지적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과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적
경제침체의 확산 가능성을 해소할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여부가 기다려
진다.

그 결실을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고 그간에 위기의 재연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나라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긴급한 국제유동성 부족 위기는 한 걸음 물러간
것처럼 보인다.

최근 가용 외환보유고가 4백30억달러를 넘어서고 세계은행 추가차입 20억
달러도 확보되었다.

올해보다 규모는 작으나마 내년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전망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단기차입의 만기기간이 몰리는 대목에서 연장여부 때문에
몇 차례 크고 작은 고비가 있을 수 있다.

변덕스런 단기자본의 국제 이동에 쉽게 붕괴한 한국경제의 위기에는 국내
경제사회의 여러 가지 취약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단순하게 핫머니 유출의 탓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도 두 가지 입장의
차이가 엿보인다.

하나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소득의 분배측면에 형평의 문제가 있었다는 견해이다.

풀이해 말하면 처음 견해는 무엇을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생산하느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업 노동 가계의 경제행위가 모두 합리성과 신축성을
잃고 집단 이기주의 잔치를 벌렸다.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더욱 비효율성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해결방법을 정부의 시장개입 축소, 시장기능의 활성화에서
찾는다.

두번째 견해는 생산물을 나누는 과정에서 계층간, 지역간 불평등이 벌어져
경제사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므로 정부가 강력한 조세 및 금융조치를
동원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상 두 가지 견해를 결합한 입장을 취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논의의 초점을 부각하기 위해 과거정권의 실적을 단순화해 보자.

61년이래 18년간의 박정권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시장기능에 대한 불신과 안보의식 때문에 조세 및 금융수단을
"정책"적으로 동원했다.

새마을운동 등으로 미루어 분배관심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으나 성장에
밀렸다.

노동법은 그림의 떡처럼 정교화되었다.

80년대초 신군부 세력은 물가안정을 강조하고 민간부문의 창의성과 시장
기능의 활성화를 외쳤다.

그러나 자원배분의 효율화와 성장의 우선 순위에 분배문제가 밀렸다.

그러나 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 등장한 노태우 정권 때부터 분배에 대한
정책배려는 높아졌다.

"2백만호" 주택건설이 그 단적인 사례였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모두 건국이래 가장 좋았던 시기에 임금상승, 생산비
인상, 기술력 저하, 중국 및 동남아경제의 부상 등에 밀려 경제 전반의
국제경쟁력 낙후를 허용했다.

93년 출범한 김영삼 "문민정부"의 신조는 정치 민주화가 되면 경제는
뒤따라 잘된다고 믿었다.

금융실명제의 과대포장 등이 말하듯 분배가 성장과 대등한 우선 순위로
부상했다.

사정과 개혁이 지속되었다.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주요 교역국과 국제관계를 거북스럽게 이끌다가
IMF 사태로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

IMF 사태속에서 선거사상 처음 야당의 승리로 등장한 김대중 "국민의 정부"
는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얼핏 과거 "대중경제론"과 입장이 다른 듯 보인다.

최근 간행된 "DJ 노믹스"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킨 논리가
전개되어 있다.

여기서는 행간에 엿보이는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에 조명해 보자.

분배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입장을 대중경제론이라고 본다면 DJ 노믹스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분배 문제의 우선 순위를 높게 매긴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사회 일각에서 조합주의(Corporatism)를 지향하는 주장이 부쩍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어떻게 조화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것은 한국경제의 내일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 문제이다.

시장경제도 사회주의도 완벽할 수 없다.

조합주의가 성공한 나라도 없다.

그같은 성향이 강한 독일도 고실업, 저성장에 고민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가 잘된 북구제국도 오히려 그 제도의 부담에 눌린 경제성장
잠재력을 일깨울 개혁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타국의 전철을 되풀이할 까닭이 있는가.

하나의 극에서 반대의 극으로 달리는 국민성을 감안하면 자칫 과거 성장
제일주의에서 요즘에는 분배 제일주의로 치닫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우리의 부존자원 조건과 국제관계 속에서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확보되는
수준에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점을 찾아야 국민소득의 지속적 향상을 기약할
수 있다.

IMF 사태가 왜 왔는가.

그 뿌리의 큰 가닥은 국제사회에서의 낮은 평판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외환부족과 기업신용 저평가만이 아니다.

국제 규범대로 움직이지 않고 한국식이 세계에 통한다는 곰살스럽지 못한
행동양식 때문이었다.

국제사회에서 평가되는 것은 시장경제와 규율이다.

시장경제는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꽃 피운다.

또 하나 문제 뿌리는 국내경제에 밑빠진 독들이 많았던데 있다.

돈을 퍼부어도 수익성 없는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임금을 올려도 생산성이
뒷걸음질치는 노동자, 주기적으로 빚탕감을 바라는 농어민, 헤프게 생활하는
가계 등 경제주체들 모두 문제였다.

정치권의 비자금수요는 가장 큰 돈의 헛구멍이었다.

이제 고작 6천 달러 남짓한 수준으로 줄어든 국민소득을 나누기보다 다시
불리기 방향으로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잡아야 한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개혁과 반개혁의 구분 잣대를 분배의 우선 순위에 두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리고 정치적 편의주의가 경제효율성을 압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경제주체들은 불안하고 위축된다.

한국경제의 21세기 선택은 역시 경제효율성제고를 최우선과제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

만년 중위권 국가로 머무느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느냐가 걸려 있는 선택
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