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재무부 시절 어느날, 이재2과(지금의 금융제도 담당관실)
구내전화 벨이 울렸다.

"나 장관인데 과장 바꿔"

"임마 네가 장관이면 나도 장관이다"

장관 전화를 다른 과 친구의 장난전화로 착각했다가 엇 뜨거워라 수화기를
놓아버린 한 직원의 실수로 이재국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범인"을 찾아내 사표를 받든지, 찾아내지 못하면 직원교육을 잘못시킨
과장의 사표를 받으라는 장관의 명령이 지엄했기 때문이다.

임창열 부총리와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

20여년전 재무장관과 이재2과장에서 이제 물려주어야 할 측과 이어받아야
할 쪽을 대표하는 위치로 국가 비상경제대책위에서 자리를 함께 한 두
사람의 모습은 이래저래 눈길을 끈다.

연령적으로 볼때 물려주고 이어받아야 할 사람이 뒤바뀐 데서 시계바늘이
거꾸로 도는 느낌을 또한차례 갖게 되는 사람들도 없지만은 않을 것이고,
경제정책의 노가 직업관료로부터 정치인으로 옮겨지는 역사발전의 당위를
느끼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같다.

어쨌든 관료, 특히 경제부처 공무원들에겐 올 겨울은 정말 겨울같은
겨울일 것같다.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것은 경제관료들의 잘못 때문이라는게 보편화된
인식이고,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맞물려 대폭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경원해체론 등 정부조직 축소요구가 강력하고,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과 경위를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가 예고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그 경위가 어떻든,정부와 관료에 대한 일반인들의 눈길은 그렇게
따뜻하지 만은 않은게 현실이다.

권위주의적 정부와 행정편의적 규제의 반작용이라고 볼수도 있고, 어쩌면
지나친 피해의식의 산물이라고 봐야할 측면 또한 없지만은 않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정부와 관료에 대한 이같은 현실적 인식이
앞으로의 변화에 상당한 변수가 될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뀌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식의 인식은 위험하다.

바꾸어야 할 것은 바꾸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김영삼 정부 초기의 공무원사회를 비아냥거린 유행어중 하나가
복지부동이었다.

복지부동하다보니 신토불이가 돼버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지금처럼 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는 여건에서 공무원들이 또다시 복지부동
-신토불이를 연출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우리 모두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부와 관료에 대한 개혁이 새정부의 과제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동시에 이를 어떻게 빨리 안정시키느냐는 것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봐야한다.

그런 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어떤 것을 철저히 지키고 보장해줄
것인지 빠른 시일내에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나라당측은 각부처에서 당에 나와있던 1급 공무원들을 행정부에서
다시 받아주도록 고건 총리에게 요청한데 이어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도
되풀이 했다.

이에 대해 김당선자도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직업공무원들의 여당파견이 정치활동을 위한 본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사이동의 결과였다고 볼때 행정부 복귀를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새 집권당의 경우에도 정책입안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차출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볼때 더욱 그러하다.

공무원은 유죄판결 또는 징계처분을 받지 않는한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면직을 당하지 않도록 법으로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1급 공무원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 국가공무원법이다.

그런 점에서 정권교체와 관련,관심을 끄는 공무원 신분보장문제는 우선
1급들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으로 집약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신한국당 파견 1급들의 복귀가 당연히 보장돼야할 성질의
것이라고 볼때 결론은 자명할 수 밖에 없다.

제도적인 시각에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질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1급인사가
정권과 진퇴를 같이한 정무직이라는 전제아래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서열과 능력을 감안한 일반직의 승진 자리"로 인식돼왔다는 점에서
그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볼수 있다.

조직개편에 따른 공무원감원과 신분보장은 물론 별개다.

국장급 이하도 자리가 없어져 면직시키는 것은 가능하도록 돼있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할때 공무원들이 정부조직개편에 신경을 곤두세울
것은 당연한 이치다.

새정부 출범과 동시에 정부조직개편이 단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있다.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눈치만 보는 기간은
가능한한 줄이고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새정부 들어서는 당과 관료간 정책기능도 재정립돼야 한다.

정책의 입안과 그 공과는 정권과 진퇴를 같이 할 당인들이 주도하고
책임져야 한다.

행정부의 고위직도 궁극적으로 그들의 몫이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관료에서 당인으로의 바뀜이 정당의 잠재력을 웃도는 속도여서는
부작용이 극대화할 것 또한 자명하다.

오늘의 경제현실에 대한 관료들의 책임을 규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빠른 시일안에 그들을 안정시키고 활기있게 뛰도록 하는게
긴요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논설실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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