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위기 이렇게 풀어라'' ]]]

한국경제가 금융공황의 깊은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

신용질서 붕괴가 빚은 어려운 국면이 연출되고 있다.

대기업과 소기업의 구분이 없어진지는 오래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의 어음도 그저 종이조각에 불과한 상황이 됐다.

은행 투신 종금 증권이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모호해졌다.

적절히 관리됐다면 호미로 막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불도저를 들이대도
소용이 없다.

정부의 진실은폐와 거듭된 늑대소년식 거짓말이 빚은 참상이다.

이는 분명 인재라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IMF와의 계약서에 대해 정치인들이 재협상을 거론하는
등 원시적 언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의 국제적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IMF가 대통령 후보들에게까지 계약이행보증을 요구했다는 것 자체는 오래
기억되어야 할 우리의 치명적 수치다.

우리 한국인들의 말과 행동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외국인들에겐 북한인이나 남한인이나 한국인이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인들이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이같은 인식은 이제 남한인들의 이미지와 중첩되어 그야말로
잊혀질만 하던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되새겨지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촌시대에 살고 있다.

냉엄한 국제규범의 수용과 이에 준하는 인식체계, 예의, 외교적 수사능력,
그리고 신사도(젠틀맨십)를 조속히 확립하는 것은 부도를 막기 위한 IMF
구제자금 확보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양봉진 부국장대우가 2년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시카고대학 로버트 루카스 교수를 찾아 그의 견해를 들어 보았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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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최근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는데.

<> 루카스 교수 =바람직한 사태발전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서있는 절박한 상황도 아닌데 한국인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같다.

남한이 북한처럼 굶는 것도 아니고,또 생활수준이 형편없이 추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OECD에 가입한지 1년도 못된 일이기 때문에 실망이 큰 것은 사실 아닌가.

<> 루카스 교수 =그렇기는 하지만 멕시코 또한 OECD에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경우를 겪었다.

세상은 어려운 때도 있지만 좋은 때도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한국인들은 IMF가 "한국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루카스 교수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국이 지나친 중상주의
(merchantilism)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예를 들면 세계 어느나라를 가든 한국의 도시처럼 한국차로만 가득찬
거리를 볼수 없다.

그 원인과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 눈에 보이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는 현실이고 또 혼자 살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가를 잘 살펴야 스스로에게 유익한 판단을 내릴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IMF의 구제금융이 이루어지면서 금융제공의 주체인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수용하기 힘든 개방수준과 수입선다변화 등을 요구한
것에 대해 모종의 국제적 음모(conspiracy)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 루카스 교수 =전혀 근거없는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누군가 추구하는 음모라고 할지라도 나는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나 개방확대가 한국을 위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수용할수 없는 수준의 개방"이라는 단어처럼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인 용어도 없으리라 본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 세상에 "수용할수 없는 개방"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편견에 불과할 뿐이다.

어느 경제건 완전 개방해야 자유시장 경제원리가 가져다 주는 혜택을
최대한 향유할수 있다.

우리 미국은 모든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미국 소비자들은 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제품을 자기의 취향과 능력에 맞게 선택하여 즐길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미국경제의 강점이다.

-그것은 경쟁력이 확보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논리가 이닌가.

<> 루카스 교수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선 국가이고 개방이 가져다줄 득을 보다
많이 향유할수 있었는데, 오래전에 했어야 할 개방을 이제까지 늦춰와 많은
기회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그 좋은 예이다.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등과 같이 한국보다 경제사정이 못한 곳에서의
개방도 한국보다는 보다 진전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IMF와의 협약 이후에 한국정부는 일부 종합금융사에 대해 영업정지를
내려 금융질서가 마비되고 그 후유증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예금주들은 자기돈을 지키기 위해 보다 안전한 금융기관으로
돈을 옮겨 놓거나, 장롱에 보관하기 위한 인출사태가 빚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자금빈곤상태가 극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처방이 있다면.

<> 루카스 교수 =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상황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리가 될 것으로
본다.

특히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회복이다.

예금주들이 금융기관을 믿지 못하고, 정부가 하는 말을 제대로 신뢰하지
않게 됐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를 조속히 불식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동전에는 "우리는 신안에서 (서로를) 믿는다"(We trust in God)는
말이 새겨져 있다.

신용(credit)질서 유지를 위해 상호간의 신용(trust)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당장에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매우 급박하다.

원화의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금리가 폭등하는 가운데 주식시장은
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빠지고 있다.

<> 루카스 교수 =지금의 상황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비상시국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같은 것을 뜻하는가.

<> 루카스 교수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금물이다.

지금상황에서는 그렇게 할수도 없을 것이다.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시카고대학의 오래된 이념
이자 주장이다.

단기적 현상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대세를 정확히 읽고
침착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적극적인 개입없이 어떻게 신뢰회복이 이루어질수 있겠는가.

<> 루카스 교수 =단기적으로 무엇인가 해보려다 더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꼬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터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예를 들어 환율 금리 주가 등이 모두 어두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때
이를 동시에 좇는 것보다는 어느 하나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일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까지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많으므로 주식시장의
장래가 그리 어둡지 않다는 전망아래 주식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수 있는
전기를 신속히 마련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간접금융에서 막힌 숨통이 직접금융 시장에서 트일수 있으며,
또 안전한 은행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자금이 주식시장이라는 연못에
고일수 있게 되고 이자율도 안정을 되찾을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금이 유입됨으로써 환율도 안정될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단기적 핫머니의 희생물로 그칠 수도 있지 않은가.

<> 루카스 교수 =핫머니를 너무 의식하다 보면 아무 것도 할수 없다.

자금중에 핫머니 성격의 자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투자 성격의 장기
체류형 자금 또한 적지 않다.

이 두 성격의 자금 모두가 원활히 움직일때 경제는 더욱 활성화될수 있다고
본다.

-그런 방안에 수긍한다 하더라도 막상 이를 추진하려 들면 한국의 각종
규제등 실무적 장애가 적지 않아 제대로 활용될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투기성자금이 아닌 장기체류형 해외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M&A(인수 합병)시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실무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이에 대한 국민 정서도 극히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 루카스 교수 =바로 그 점이 이번 IMF의 구제금융사태가 갖는 중요한
의미라고 본다.

특히 국민적 정서란 매우 비경제적인 개념이다.

경제는 현실이고,감성보다는 이성으로 풀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보다 개방되고 규제가 적은 나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특히 M&A는 무조건 나쁜 것이고,남에게 무엇인가를 빼앗길수 있다고 결론
짓는 사고는 경직된 것이다.

예를들어 한국의 회사를 외국인이 소유할 수는 있지만 그 공장을 통째로
뜯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고용기회확대 수단이 될수도 있고 기술이전, 경영노하우
전수,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수출시장의 범위와 기회를 늘릴수 있는
계기도 되는 것이다.

한국기업들도 영국이나 우리 미국에 많이 진출해 있지 않은가.

LG가 제니스(Zenith)를 인수한 것이나, 현대가 맥스터를 인수한 것 등이
좋은 예다.

영국에서는 여왕까지 나와 환영하지 않았는가.

어느 나라 경제건 외국의 자금과 인원 기술이 많이 들어와 있으면 있을수록
득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빨리 외부에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은데.

<> 루카스 교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보며 10년전에 했어야 할 일을 지금에 와서 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 사태가 한국엔 황금같은 기회가 될지 모른다.

왜냐 하면 일본같은 경우는 한국이 갖고 있는 지금과 같은 기회를 갖고
싶어도 가질수 없는 상태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이 이번 IMF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잘 수용하고 이를 전기로 삼아
개혁의 길로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난국을 쉽게 극복할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정리=이학영 뉴욕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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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37년 출생
<>.시카고대 경제학과 졸업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카네기멜론대 교수
<>.시카고대 교수
<>.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주요저서 : ''합리적 기대와 계량경제 연습'' ''경기순환 이론 연구''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