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단세포냐, 아니면 천치냐? 아무리 그놈이 변강쇠라 하더라도
그 치는 겨우 프로골퍼 아니냐? 그런 자와 네가 다시 결혼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실험결혼을 하냐? 다른 조건이 다 맞을 때나 실험을 해볼 일이지.
겨우 석두 같은 놈을 실험해봤다구?"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딸의 모습이 측은해지자
김치수는 독설을 퍼부으려다가 그쯤 해서 그만 둔다.

그리고 금쪽같은 딸이 또 실수로 결혼을 잘 못 할까봐 이번에는 기어코
자기가 그녀의 남편감을 고를 것이라고 단단히 벼른다.

물론 영신도 지코치와 결혼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아버지, 잘 못 했어요. 저는 이제 결혼같은 것 안 해요. 혼자사는 것이
훨씬 편해요. 아버지 용서할 수 없는 점이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아주세요. 저는 결코 윤효상과 더 이상 법정에서나마 만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도 가엾어 보인다.

그녀는 아버지 같이 강한 남자에게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나오면 오히려 화를 풀고 인자한 아버지로
돌아가지만, 버티거나 반항하면 어림도 없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언제나 순종하는 어린 양처럼 보여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그러니까 김치수는 EQ 높은 영신에게 언제나 겉으로는 이기고 속으로는
지는 훈훈한 아버지이다.

아니 져주는 것도 많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지코치를 아버지에게 효과적으로 이미지업시켜 좋은
아들처럼 만들 것이라고 속으로 치밀한 계획을 짠다.

EQ는 김치수가 딸보다 한수 밑이다.

그녀는 IQ 높은 아버지를 이기는 법을 알고 있고 김치수는 그녀의 단수에
언제나 말려든다.

김치수 생각에 그녀는 언제나 열네살 소녀다.

"정말 너 이번에는 애비 말대로 할 거지?"

"그렇대두요. 제가 아버지를 속상하게 해준 일은 있어도 의도적으로
말을 안 듣고 내 고집대로 한 일은 없잖아요"

"아무튼 세번째 신랑은 내가 고를 것이니 그리 알아라. 네가 계속 실패를
해서 내가 나서겠다는 거다"

"하지만 아버지가 변강쇠인지 뭔지 알 수는 없잖아요? 그 테스트는 내가
해야죠, 히히히"

그녀는 농을 하면서 생글생글 웃는다.

불쌍해보이는데 약한 아버지는 또 그녀의 단수에 넘어가면서 어디서
저런 멍텅구리같은 딸래미가 태어나서 자기의속을 뒤집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아버지,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보고 결정하라는대로 할게요. 저두 이제
그만 실수하고 싶거든요"

"터진 입으로 말씀 한번 잘 하신다. 어쨌든 네가 당장 해결할 것은 그
변강쇠하고 잘 짜는 거다. 절대로 잔 일이 없다고 해야 되는 거다.

어떻게 번 돈인데 달라는대로 척척 내줘. 빈대같은 녀석. 정말 비겁한
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