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럼투성이 중은 보옥의 구슬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청경봉 기슭에서 너와 헤어진 것이 바로 어제일 같은데 어느새
세월은 흘러 십삼년이 되었구나.

인간 세상에서는 세월이 이렇게도 빨리 지나가는구나.

먼지와 티끌과 같은 인연에 매여 속절없이 떠내려 가는구나.

하지만 그때는 네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모두 부러워하였도다"

이번에는 절름발이 중이 시를 지어 읊었다.

하늘에도 땅에도 매이지 않고 기쁨도 슬픔도 마음에 없더니 단련을
받아 영험을 얻은 뒤로는 인간계에 들어와 시비를 따지려드네 그 시를
들으며 부스럼투성이 중이 중얼거렸다.

"시비만 따졌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지금 너의 신세가 가련하게
되었구나"

절름발이 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를 이어나갔다.

연지와 곤지 자국에 보배로운 빛을 잃고 밤낮으로 원앙처럼 방안에서
잠을 자네 단꿈도 결국은 깨고 마는 법 인과를 청산하고 깨끗이 흩어지리
"오, 애석하도다. 애석하도다"

부스럼투성이 중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때를 닦아내듯이 구슬을 손으로
비비며 열심히 주문을 외었다.

그리고 나서 구슬을 가정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제는 이 구슬의 영험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니 이후로는 구슬을 더렵혀서는 안됩니다.

환자들을 한 방에 눕히고 그 방 대들보에 이 구슬을 잘 걸어두십시오.

그리고 방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외에는 아무도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서른세 밤을 지나면 환자들이 차츰 회복되어 완쾌하게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중들은 몸을 홱 돌려 방을 나가버렸다.

가정이 그들에게 사례를 하려고 곧 뒤따라 나갔지만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하늘로 사라졌나 땅으로 꺼졌나.

참 희한한 일이로고"

가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와 그 중들이 지시한 그대로 하였다.

그런데 그 효과는 바로 그날 밤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승사자가 자기를 데리러 왔다고 하던 보옥이 두 눈에 초점이
돌아오더니 배가 고프다면서 먹을 것을 찾았다.

희봉도 헛소리를 그치고 숨을 몰아쉬며 의식을 되찾았다.

대부인과 왕부인은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며 미음을 끓여 가지고
와서 두 사람에게 먹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