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형 < 고려대교수/국제경제학 >

대법원과 세계화추진위원회가 합의한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이 오는 8일까지
입법예고 중이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우리 사법제도와 법률문화의 근본적 개혁의 근간이
된다.

사법시험은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조인이 되기 위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과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온갖 지혜를 다하여 합의하였을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법학교육과 법률서비스 측면에서 합리성과 균형을
상실하고 있음이 크게 우려된다.

특히 국제법이 헌법 등의 다른 기본과목과는 달리 사법시험의 2차 필수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으며 국제경제법은 전혀 사법시험의 독립된
과목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2년전 이맘때 우리 언론은 정부가 UR협상에서 실패하였다고 질타
하였다.

그 실패의 원인으로 국제법 전문지식과 협상기술의 부족을 지적하였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일찍이 양성하지 못한 학계에서는 국제경제법
과 국제법의 교육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부도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 "국제경제법을 포함한 국제법"을 필수과목
으로 채택함으로써 공무원들이 국제경제법을 포함한 국제법의 전문지식을
갖추게 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전체로서 국제경제법과 국제법의 교육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새로이 합의된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우리의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관점에서 전혀 "개선"이라고 할수 없다.

특히 세계화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간된 "사법개혁-그 시작과 끝"
이라는 해설자료 36쪽에서 "통상등 새로운 전문분야의 법학과목을 시험과목
으로 편입"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화추진위원회의 설명을 존중한다면 새로이 1차 제2선택과목으로 추가된
"국제거래법(국제사법 포함)"이 통상분야의 법학과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국제간 거래에 관한 법규범인 국제거래법은 통상에 관한
법이 결코 아니다.

국제경제관계에서의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규범인 국제경제법이
통상에 관한 법이다.

따라서 통상분야의 법학과목을 사법시험과목으로 편입하였다는 세계화
추진위원회의 설명은 사실과 다른 것임을 알수 있다.

국제거래법은 상법의 인접법으로서 신용장의 개설등 기업의 국제적 거래에
관한 법규범을 의미하며 국제사법은 우리 국민과 외국인과의 결혼이나 이혼
등 민상법상 법률관계에 외국요소가 개입된 경우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한
법규범을 의미한다.

국제사법이 국제거래법에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른 법체계가 하나의 시험과목이 됨으로써 이들 분야의
교육과 연구가 효율적으로 수행될 지도 의심스럽다.

국제경제법은 국제거래법이나 국제사법과 크게 다른 학문영역이다.

국제경제법은 국제경제관계에서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규범을
의미한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후 출범한 IMF를 중심으로 한 국제통화제도, IBRD를
중심으로 한 국제개발제도및 GATT와 WTO를 중심으로한 통상제도가
국제경제법의 주요내용이 된다.

또한 미국과 EC의 통상법도 국제경제법의 주요내용이 된다.

국민들에게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긴급수입제한
조치는 물론 미국의 무역법 301조 등이 국제경제법의 한 부분이 된다.

더욱이 WTO체제에서 국제투자와 경쟁정책에 관한 국제규범이 형성되면
역시 국제경제법의 한 부분이 된다.

이러한 국제경제법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크게 발전하였으며, 군사적
냉전체제를 대체한 현재의 경제냉전체제에서 앞으로 계속 우리 경제에
지극히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국제경제법이 사법시험에 독립된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음은 우리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있어서 법학교육의 책임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더욱이 사법시험과목은 법학교육과 법조인의 기능 수행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됨을 주목해야 한다.

전문법과대학원의 설립이 무산된 현시점에서 국제경제법이 사법시험과목이
되는 여부는 더욱 중요하다.

학생들은 사법시험과목으로 채택된 과목만을 열심히 공부하며 학교당국도
이들 과목에 대하여만 전임교수를 두려 하기 때문이다.

국제경제법이 사법시험과목으로 전혀 채택되지 않음으로써 오늘 이후의
국제경제법의 연구와 교육은 물론 우리의 국제경쟁력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 자명하다.

또한 대학교에서 국제경제법과 국제법을 올바로 교육받지 못한 법조인들이
정부.기업 등에게 오늘날 일상적인 국제경제법 문제에 대하여 효과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될 것도 자명하다.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주장하듯이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에 통상분야의 법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면, 국제경제법이 독립된 과목으로서 새로이 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경제법이 독립된 과목으로서 채택될 수 없다면, 세계화추진위원회는
이번의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에 통상분야의 법이 편입되었다는 주장을 철회
하여야 한다.

그러나 사법시험령의 개정취지인 대학교육의 내실화와 전문법조인의 육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제경제법은 반드시 사법시험의 독립과목으로 채택되어야
하며, 국제법은 2차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사법시험과목의 문제가 올바로 해결되어 우리 법조.법학계가
다른 분야와 함께 국제경쟁력 제고에 제 몫을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