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련을 짓지 못하고 있느냐?"

가정이 보옥에게 재촉을 하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보옥은 여전히 등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대련을 짓지 않으면 이때까지의 잘못을 모두 물어 따귀를 맞을줄
알아"

가정이 금방이라도 손을 들어 보옥의 뺨을 때릴 기세였다.

보옥은 허겁지겁 시를 읊기 시작했다.

봄물은 불어 갈포 씻는 빨래터에 넘실거리고 꽃구름 향기 미나리
캐는 여인을 지켜주네 보옥의 시를 듣고는 가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좋아. 좋지 않아"

가정이 그런 반응을 보이리라고 예상했던 바이긴 하지만 보옥은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경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는데도 그 경치를 두고 대련을 지으라고
하는 아버지의 심보는 무엇이란 말인가.

좋지 않은 시가 나오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시를 짓도록
하고는 시를 짓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혹평을 하는
아버지가 잔인하게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전생에 아버지랑 원수로 지냈나.

이생에 부자지간을 맺었으면서도 저리도 자식을 미워하다니.

가정과 문객들은 어느새 산모퉁이를 돌아 꽃밭사이를 지나 버드나무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바위들이 나타나 그 바위들을 손으로 짚어가며 타고 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맑은 샘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일행은 샘물을 에돌아 시렁처럼 생긴 목향나무 다리를 지나갔다.

모란정이라는 정자를 끼고 돌아가니 작약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난
꽃밭이 나타났다.

그 작약꽃밭을 통과하자 어느새 장미꽃이 만발한 화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장미원을 지나 파초가 가득 자라고 있는 언덕길을 구불구불
걸어나가는데 어디선가 냇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려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 물은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위에는 온통 담쟁이풀이 드리워져 있었고, 물 위에는 낙화와
낙엽들이 동실동실 떠다니고 있었다.

"야, 절경이로고"

사람들이 감탄을 하며 냇물 위에 떠 있는 꽃잎들을 주워올렸다.

"여기는 이름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이 그냥 무릉원이라고 명명하면
되겠는데요"

한 문객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무릉원은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에 나오는 구절로 이상국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