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징그러운 초록빛 들녘을 지나 오랫만에 청주 "운보의 집"을 찾았다.

노화백은 반가워하며 두팔을 벌려안은 채 말없이 등만 두드리고 있었다.

순탄치 못한 한시대를 살면서 한국미술을 굳건히 지탱하고 있는 대들보
앞에서 한없이 작아보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은 나와 직접 사제관계는 아니지만 참으로 오랜동안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마음의 스승이다.

내가 미대 4학년생으로 국전에 출품했을 때 심사위원장으로 작품평을 쓰신
것이 첫인연이다.

그후 회의장에서 심사장에서 화실에서 수많은 필담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아왔다.

이번 만남도 "운보의 예술과 신앙"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많은 얘기 끝에 동양화와 서양화란 얘기가 나왔다.

선생께서 갑자기 흥분된 어조로 "아직도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말을
쓰는냐"며 꾸중하셨다.

모두가 다 한국의 그림을 뿐이라는 것이다.

해방된지 50년, 미술의 해를 반이나 넘겼것만 용어의 개념조차 정립못한채
양적팽창만 거듭하고 있다.

우리화단에는 일찌기 서구화가 곧 현대화며 세계화라는 그릇된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미술은 창작이다.

대한민국의 화가가 서양화가일 수 없으며 서양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국내에서는 서양화가로, 외국에 가면 한국화가로 처신해야 하는 현실이
우스갯감이다.

그림의 내용 즉, 내포가 우리것이라면 표현의 형식 즉, 외연인 재료와
기법등이 서양적인 것이라도 당연히 "우리그림" "한국의 회화" 그냥 "회화"
일 따름이다.

이유야 어떻든 미술교육에서 동.서양화과를 분리한후 더욱 큰 이질화를
초래했다.

그러면 왜 통폐합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동안 세태의 거센 서구화 경향으로 양적팽창을 거듭한 대세 앞에
정통미술교육이 설땅을 잃었기 때문이다.

내것을 먼저 배우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당연한 문화수용의 원칙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무지 속에서의 통폐합은 곧 전통미술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 그림은 끝내 "우리그림"일 뿐이라는 생각을 확인하며 집을 나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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