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일컬어 신용사회라고 한다.

너무 자주 쓰이는 말이라서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신용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랄까, 상징물을 꼽으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신용카드를 고를 것이다.

그만큼 신용카드는 널리 보급되어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지불수단 또는 현금융통수단으로 그 이용도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백화점과 같은 일부 전문점이 아닌 금융기관주관의 신용카드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87년의 국민카드부터이니까 그 역사는 이제 10년이
못된다.

그러나 견줄게 없을만큼 빠른 성장을 했다.

금년 10월말 현재로 발급수량이 총 2,252만장에 가맹점포수 232만개소를
기록하고 있고, 사용금액은 10개월동안 지난해 동기보다 46.4% 늘어난
30조2,827억원에 달했는데 이중 절반이 넘는 16조원이 현금서비스였다.

그런 신용카드의 발급기준과 불법이용자에 대한 제재조치를 내년 1월1일
부터 대폭 강화할 것이라는 당국의 발표가 나왔다.

재무부의 이른바 "신용카드업무 개선대책"이 그것인데 이를 보는 심경은
한마디로 착잡하다.

딱하고 한심스럽다고 말하는게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강화된 발급기준과 제제조치내용의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문제삼으려는게
아니다.

행정규제의 고삐를 늦춰주지는 못할망정 더욱 죄려는 재무부의 기본자세가
문제이고 언제까지 정부가 그런 구석까지 시시콜콜 간여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당국은 신용카드 회사들의 무분별한 카드발급과 그에 따른 과소비풍조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점을 명분과 배경으로 제시한다.

물론 문제는 있다.

카드 회사들의 치열한 경쟁과 허술한 관리로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개입과 관리강화조치가 정당화될수 있는건
아니다.

카드 발급기준과 자격요건을 어떻게 하건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카드 회사
가 정할 일이다.

회사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기준 다른 요건을 설정할수 있으며 또 실은
그래야 한다.

동시에 서비스 내용도 다양할수 있다.

그게 바로 시장경제와 경쟁사회의 기본원리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경쟁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사에 획일성을 지나치게 애호하는 버릇이 있다.

관리들은 특히 그렇다.

직장경력 1년미만자, 학생, 미성년자를 발급금지 대상으로 정한 것도 바로
그런 관행과 사고의 소산이다.

신용카드는 기본적으로 카드회사 자신의 신용조사와 평가를 근거로 발급
하면 되고 관리의 책임도 일차적으로는 발급회사에 있다.

그 점이 하루빨리 분명해져야 한다.

그래야 신용카드 회사들이 홀로서고 국제적으로도 경쟁할수 있게 될
것이다.

자율화한 이용한도를 다시 제한하겠다는등 당국은 지금 거꾸로 가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