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는 결국 관리소홀과 부실시공때문에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론 멀쩡했지만 속으로 멍들고 있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럴듯한 조직이라도 내부잡음이 끊이지
않으면 제대로 지탱할수 없다.

그런면에서 행장의 "2인자관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단기적으론 조직역량의 극대화를 꾀할수 있고 장기적으론 자신의 후계자
를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철수제일은행장. 그는 평균적인 은행장이다.

지난59년 입행해 35년간 은행밥을 먹고 있으며 영남(경남의령)에다
서울대상대출신이다.

올해 나이 58세.능력이나 인품으로 보아 "으뜸은행"의 장으로 절대
모자람이 없다는게 금융계의 평이다.

이런 그도 박기진전행장이 없었더라면,또 박행장이 중도에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은행장실입성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게 내부사람
들의 얘기다. 그 근거는 이렇다.

이원조전의원과 가까왔던 박행장은 지난90년 이행장을 전무로 천거했다.
서열이나 능력상 하자없는 인사였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없었던건 아니다.

그리고 지난해 박행장이 중도퇴진하면서 중임중이던 이전무는
자연스럽게 "행장대행"이 된다.

이어서 지난해 5월26일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 행장으로 취임한다.

"만일 주주총회를 치렀더라면 입행이 앞섰던 임원들의 반발로 간단치
않았을 것"이라는게 주변사람들의 관측이다.

실제 이행장은 취임초기 일부로부터 상당한 반발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일선지점장들은 사보타지를 행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행장은 "2천년대 장기계획" "상업증권인수" "연구소설립등
종합금융그룹지향"등 잇달은 "파워드라이브"로 박행장의 선택이
옳았다는걸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이런 뒷얘기를 갖고 있는 이행장이 지난해 복수전무제를 부활하면서
단행한 인사는 눈길을 끈다.

자신과 입행동기인 김종덕전무를 시니어그룹대표로 선택한 것은 당연
했다치더라도 신광식전무의 "발탁"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당시 신전무는
상무서열6위에 불과했다.

"전무들끼리의 파벌다툼으로 조직의 역량을 저하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이행장의 변이었다.

이렇듯 행장의 "2인자 선택"은 조직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납득키
어려운 인사를 하거나 감당키 힘든 아랫사람을 둔다면 집안은 엉망이
되고 만다.

지난해 한일은행은 한동안 "한지붕세가족"이었다.

윤순정행장의 임기(초임)를 몇달 앞두고 전무와 감사가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말을 숨기지 않으면서 이런 말이 나돌았다.

결국 연임에 성공한 윤행장은 두 사람의 임기에 맞춰 "정리"라는 수순을
걸었다.

은행원들에게 은행장은 탐내 볼만한 자리임에 분명하다. 불과 한두사람
만을 위에 두고 있는 전무나 감사는 말할것도 없다.

지난해 시중은행주주총회가 끝난 직후 청와대에 한통의 탄원서가 날라
들었다.

발신자는 조흥은행 모임원의 부인. "서열이 남편보다 아래인 (우찬목)
상무가 전무로 발탁된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게 탄원서의 요지였다.

일단 전무가 돼야만 내년에 임기를 맞는 이종연행장이후를 바라볼수
있었던 그 임원가족으로선 안타까울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이철수행장이나 윤순정 이종연행장은 결과적으로 조직이 곪지
않도록 방부제를 뿌리는데 성공한 것으로 볼수 있다.

정지태상업은행장은 한발 더 나가 "보배"같은 전무를 둔 행복한 은행장
으로 꼽힌다. 배찬병전무는 정행장보다 입행이 몇달 빠르다.

뿐만 아니라 두사람은 얼마전까지만해도 호형호제를 했을 정도로 막역한
관계이다.

그런데도 배전무는 2인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양처리나 자구노력
추진에 은행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같은 상황에서 "전무파"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 자신이 물러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 내부투서가 발단이 돼 구속까지 이르렀다는 안영모동화은행장이
대표적이다.

지난92년 사임한 이상경대구은행장이나 지난2월 물러난 권태학대동은행장
도 결국은 "전무관리의 미숙함"이 중도퇴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렇듯 은행장들의 "2인자관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기에 따라 전무는 강력한 라이벌이 될수도 있고 조직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않는 후계자가 될수도 있다.

행장실의 문턱에서 "문책경고"로 분루를 삼킨 전무를 거느리고 있는
손홍균서울신탁은행장과 장명선외환은행장의 해법이 궁금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