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 <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


기업주들이 탈세하거나 이윤을 포탈하다 들통이 나서 쇠고랑을 찰 지경이면
부하중의 철저한 아부파에게 뒤집어 씌워 대신 들어가게 하고 자기는 살짝
빠지는 악덕 기업주들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세상이다.

금일봉에다 사후처리 생계일체를 책임진다는 입에 발린 의리의 약속이지만
약자의 양보는 희생이다.

자동차운전자들에게 이런 희생적인 양보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양심적인 양보면 만사 형통이다.

핸들을 잡고 양보와 담쌓는 기질은 대략 3가지다.

권위의식이 강한자,피해의식에 깊이 빠진자, 경쟁의식에 눈이 먼자들이다.

권위의식은 돈과 권력의 과시를 대개 고급외제차로 나타낸다.

벤츠나 캐딜락, BMW나 볼보등을 타고 다니면 다른차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다는 교만성이 양보심을 빼앗는 것이다.

국산차를 타는 보통 사람들은 외제차를 건드리면 바가지를 쓴다는 통상
관념 때문에 양보하게 마련이다.

약자들의 양보를 그들은 마음껏 즐기며 다니는 것이다.

고급차를 타는 사람들이 끼어들거나 과속 차선침범 불법주차 무단U턴등
교통질서를 깨뜨려도 모른체하는 교통경찰들이 간혹 있다.

그들의 배경이 두렵기 때문인가.

자동차시대를 가장 먼저 맞아들인 영국은 200여년에 가까운 자동차역사를
지닌 나라답게 줄서기를 좋아한다.

시간이 한없이 걸려도 끼어들거나 아우성을 치지 않는다.

또한 수상이건 장관이건 국회의원이건 교통질서를 위반하면 달갑게 처벌을
받는다.

지난86년에 있었던 일이다.

일본 도쿄에서 멀지 않은 어느 해변도시의 한호텔에 수상일행이 들렀다.

마침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시기여서 이곳 입후보자의 찬조연설을 하기위해
온것이다.

일행을 맞이한 정치가나 지방유지들의 번쩍이는 세단자동차들이 몰려들어
호텔앞길을 메우고 경찰관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 도시의 한 노인이 초라한 500cc 짜리 미니카를 운전, 호텔앞을
지나려하자 한 경찰관이 달려와 공손히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길로 돌아가기
를 간청했다.

그러자 노인은 기세당당하게 그길을 고집하면서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인데
기본적인 질서를 무시한다면 국회의원자격이 없다. 빨리 저차들을 치워
내길을 비키지 않으면 선거를 방해하겠다"고 호통쳐 기가 질린 경찰이 차를
이리저리 치워 통과시켰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대낮에 헤드라이트를 번쩍이거나 빵빵대며 바짝
따라오다가는 추월, 바로 코앞에서 끼어들어 진땀나게 하면 화도나고
자존심도 상해 자기도 따라하는 복수경쟁.

우리나라에서는 주간에 라이트를 켜고 뒤따르면 길비키라는 공포의 경고다.

영국차들의 대낮 라이트 켜기는 우리의 경우와는 방대로 양보한다거나
상대방차에 이상이 있다는 고마운 신호다.

추월 끼어들기 밀어붙이기 과속 급정거 급발진의 명수인 운전자들은 경쟁
의식 고수하다가는 죽음의 고속도로로 진입하게 됨을 명심해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