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8시께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 마트는 비교적 한산했다. 대부분 상품 코너나 매대가 텅텅 비어 손님을 찾기 힘들었다. 다만 반값 할인 제품을 팔거나 마감 세일을 하는 식품 코너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장을 볼 때마다 평일 저녁 마감 할인 코너를 찾는다는 주부 박모 씨(42)는 “물가가 너무 올라 제 값 내고 장을 보면 생활비 부담이 너무 커지더라. 요즘은 정상가로는 구매를 안 한다”고 했다. 이어 “마감 시간 즈음 오면 할인을 많이 하는 편이라 일부러 늦게 마트를 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전방위적 물가 상승과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 ‘반값’ 등 최저가 상품에만 소비자 관심이 쏠리는 불황형 소비 패턴이 확산하고 있다. 극도로 위축된 소비심리에 유통업계는 반값 이상의 ‘땡처리’ 할인행사에 나서고 있다. 업체들 입장에선 수익을 내기 어려울 정도지만 어지간한 가격에는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할인경쟁을 펼치는 분위기다.
'6990원 치킨' 불티나게 팔리는데…대형마트 '눈물' 이유가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속되는 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무조건 싼 게 최고’라는 소비 패턴이 자리 잡았다. 값이 싼 실속형 저가 상품에만 몰리자 주요 대형마트들은 잇달아 반값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등 최저가 경쟁으로 고객 잡기에 혈안이 됐다.

반값 치킨, 반값 탕수육에 이어 최근엔 프랜차이즈 수준의 토핑을 내세우는 프리미엄 피자를 60~70% 수준에 판매하는 제품도 나왔다.

롯데마트는 오는 22일부터 새우 토핑 1파운드가 들어간 프리미엄 피자 ‘원파운드 쉬림프 피자’를 1만9800원에 판매한다. 프랜차이즈 피자 라지 사이즈(13인치)보다 약 2배 큰 18인치 대형 피자에 1파운드(453g) 새우 토핑을 넣었다. 홈플러스도 앞서 ‘시그니처 피자’를 정상가 4990원에서 2490원에, 이마트는 ‘소시지 피자’를 1인 1판 한정으로 5980원에 각각 판매했다.

반값 치킨에서 시작한 대형 마트들의 델리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대형 마트들은 반값 메뉴를 탕수육, 비빔밥, 샐러드 등으로 다양화했다. 홈플러스는 델리 코너 ‘푸드 투 고’를 확대해 자체 피자 브랜드 상품 등을 판매하고, 롯데마트도 전문 셰프로 구성된 푸드이노베이션센터를 중심으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이마트는 고급 어종을 활용한 숙성 초밥과 카프레제 샐러드 등 프리미엄 델리 식품을 연달아 내놨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 즉석조리식품 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 즉석조리식품 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반값 할인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은 몰리는데 정작 대형마트 실속은 떨어진다는 점. 초저가 할인 경쟁 탓에 물건을 많이 팔아도 돈을 벌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고물가, 고비용 구조에서 늘어나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가 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회계연도(2021년 3월~2022년2월) 영업손실 1335억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한 데 이어 올 1분기(2022년 3월~5월)도 영업손실 565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 점포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매출 감소로 고정비 부담이 커졌고 할인 등 프로모션 비용도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올 상반기 롯데마트(국내 사업 부문) 역시 1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마트 또한 작년 상반기 대비 영업이익이 83.1%나 감소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3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용평가사 등 외부 전문기관들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홈플러스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사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영업적자가 확대되는 등 수익 창출력이 저하됐다는 이유에서다. 자산매각에도 재무 안정성이 미흡하다는 것 역시 반영했다. 글로벌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이마트 신용등급을 'Ba1'에서 'Ba2'로 낮췄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경기가 생각보다 많이 안좋다”고 우려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 즉석조리식품 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 즉석조리식품 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반기 전망도 좋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당장 대형 마트 3사의 7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이 평균 12.1% 증가했고 백화점과 편의점이 각각 31.6%, 10.4% 성장한 것과 비교된다. 올 들어 리오프닝 기조로 외부활동이 늘어나며 오프라인 유통채널 회복을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수치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마트를 찾는 고객들도 할인 행사나 저렴한 제품에만 관심을 갖는다”면서 “반값 제품들이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효과는 일부 있겠지만 수익 면에선 사실 남는 게 없다. 말 그대로 출혈 마케팅”이라고 털어놨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