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물은 소중하지만 평등하진 않다
고려 후기 학자 이규보(1169~1241)의 집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대뜸 “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규보가 이유를 묻자 “누군가 큰 몽둥이로 개를 쳐 죽이는 걸 봤는데 너무나도 끔찍했다”고 답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규보는 “저는 앞으로 머릿니를 잡지 않으려 한다”며 “누군가 이를 잡아 불태우는 걸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님이 “머릿니는 한낱 미물이지 않냐”고 항변하자 이규보는 “생명에 크고 작은 게 있냐”고 반문했다. 이규보와 손님, 둘 중 누가 옳은 걸까.

미국 철학자 셸리 케이건은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에서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케이건의 주장에 따르면 이규보의 논리는 모순적이다. 머릿니와 개는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 그는 “수많은 동물의 특성을 ‘헤아리지’ 못한 채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도덕 관념 하나로 상황을 판단해선 안 된다”며 “동물을 나눠 보지 않으면 개는 가족처럼 대하고 소는 잡아먹는 우리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동물도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도덕적 단일주의’를 비판한다. 단일주의자들의 입장에선 쥐와 사람이 강물에 빠졌을 때 사람을 우선 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둘 다 동등한 생명체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마다 계층을 나눠 달리 바라보는 ‘계층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동물마다 지적 능력, 기대수명 등이 다르다”며 “이런 특성을 고려해 차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동물의 권리를 포기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치밀하게 분석해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사람은 동물 전체에 보편적 복지를 제공할 순 없다”며 “차이를 인정하고 선별적 복지를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철학적 논증은 실천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저자는 “사람을 비롯해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주장은 추상적일 뿐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며 “사회적 공론화를 위해서라도 동물 권리에 계층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