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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26일, 데이비드 마르케는 미국 전투용 고속 핵잠수함 산타페함에 올랐다. 미 해군 내 이직률 최고, 전투력 최저란 평가를 받은 이 잠수함의 함장으로 공식 취임하기 14일 전이었다. 마침 기관실 앞에서 보초를 서던 하사에게 “여기서 하는 일이 뭔가?”라고 물었다. 하사는 망설임 없이 “위에서 시키는 것은 뭐든지 다 합니다”라고 답했다.

마르케는 이런 수동적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윗사람들이 모두 틀렸다고 내 면전에 대고 쏘아붙이는 것과 다름없었다”며 “자신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르케는 잠수함 내 의사결정 구조에 큰 문제가 있음을 직시했다. 실제로 그가 관찰한 산타페함에선 함장과 소대장을 제외한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었다.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해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135명 중 5명뿐이었다. 마르케는 미 해군을 통틀어 가장 조악한 잠수함이라는 악평을 듣는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그는 함장 취임 1년 만에 산타페함을 모든 평가 기준에서 최고 성적을 받는 잠수함으로 탈바꿈시켰다. 산타페함은 미 해군에서 최고 임무 완수 성적, 7년 연속 ‘최고 반장상’, 3회 이상 ‘최우수 전투력상’을 받았다. 무모하리만큼 독창적이었던 그의 리더십 실험 덕분이었다.

[책마을] 시키지 않고 맡기니…'만년 꼴찌 핵잠수함' 1등 됐다
《턴어라운드》는 마르케가 산타페함을 변화시킨 리더십의 실체를 직접 생생하게 담아낸 책이다. 그는 산타페함의 리더십 전환을 이뤄낸 과정과 방법을 ‘통제권(control)’ ‘역량(competence)’ ‘명료성(clarity)’에서 따온 ‘3C’의 키워드로 정리해 기술한다.

마르케가 함장 취임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각 실무자에게 모든 권한을 완전히 위임했다. 통상 장교들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자기 생각을 말하면 그는 “그렇게 하라”라고만 했다. 이는 상명하복식 ‘리더-팔로어’ 체계에서 상향식 ‘리더-리더’ 체계로 가는 첫 단계였다. 그가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않자 장교들의 목표는 상관 지시의 성실한 수행이 아니라 함장이 간단히 승인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고 온전한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 됐다. 저자는 “이렇게 한 발짝 나아간 덕분에 그들의 생각이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이제 당직사관은 함장처럼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 변화는 지휘계통을 따라 내려가면서 연쇄반응을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리더십 모델의 한계를 벗어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권한위임’이란 통제권 전환이 어떻게 해답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른바 ‘맡기는 리더십’이다. 부하 직원들에게 리더로서 그에 걸맞은 힘을 부여하고 권한을 맡긴 덕에 이들이 사실상 한 계급 위의 지휘관처럼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최근 10년간 산타페함 장교들과 반장들은 다른 어떤 잠수함 승조원보다 더 많이 진급했다. 오래전에 저자가 산타페함에 심어 놓은 ‘제가 이렇게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리더십 캠페인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권한위임’에 의구심을 갖는다. 부하들이 산타페함 승조원들처럼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속 부하들이 해당 주제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고, 이들이 조직에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려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저자는 “핵심 코드를 수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 핵심코드는 개인에게 조직 통제권을 주되 그들로 하여금 개선과 발전을 모두 책임지게 하는 것”이라며 “잠수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반드시 해당 통제권을 지닌 누군가가 책임지고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맡기는 리더십’의 또 다른 필수요소는 ‘역량’이다. 구체적으로는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지식과 전문적 능력이다. 저자는 “아래로의 권한 이양만으로는 리더십 전환을 이룰 수 없다”며 “누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내가 사용하는 기술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도 없지만 의사결정 능력이 향상될수록 그 결정의 바탕이 되는 기술적 지식에 정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명료성’, 다시 말해 ‘목표의 확립’이다. 의사결정 권한이 지휘계통의 아래쪽으로 점점 더 많이 이양될수록 구성원이 조직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르케는 간부들에게 그가 산타페함에서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각 소대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더 큰 차원의 목표를 지지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 저자는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는 것은 조직의 명료성에 관한 중요한 행동원리”라며 “목적의 명료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의사결정 기준이 흔들려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