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오은 시집 등 출간 즉시 중쇄…시에서 위로 찾아

한동안 외면받았던 시(詩) 문학이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단문 위주로 전달·공유되는 모바일 SNS 문화가 일반화된 가운데 각박한 삶을 짧은 글로 위로받으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문학 여러 장르 중에서도 시가 특히 주목받는 분위기다.

문학계는 1990년대 꽃피웠다가 침체한 시 문화가 앞으로 더 큰 부흥기를 맞을 것으로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19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시집 판매가 최근 3년간 계속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특히 올해 들어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

1월부터 8월까지 시집 판매량을 전년도와 비교한 신장률이 2012년에는 31.6%였다가 2013년 -0.9%를 기록했으나, 2014년 0.2%, 지난해 8.9%, 올해 37.6%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여줬다.

연도별 판매량을 따졌을 때 올해 판매된 시집은 지난 5년간 판매된 총량의 26.8%를 차지하며 큰 비중을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시집을 많이 구매한 주요 독자층은 '20대 여성'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 독자가 63.2%로 남성(36.8%)보다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20대(28.1%), 30대(23.1%), 40대(22.1%), 50대(16.8%), 60대 이상(7.7%) 순으로 젊은 독자층이 두터운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연령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시집을 많이 찾았지만, 유독 60대 이상은 남성(5.5%)이 여성(2.2%)보다 비중이 커 눈길을 끌었다.

최근 시집에 대한 이런 호응은 모바일·SNS 문화의 발달과 관련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시인들의 시집이 특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페이스북 팔로워가 2만 명이 넘는 류근(50) 시인이 지난달 31일 출간한 새 시집 '어떻게든 이별'은 나오자마자 주문이 폭주해 중쇄(2쇄를 찍는 것)에 돌입, 벌써 6천 부를 찍었다.

류근 시인의 팬을 자처하는 독자들은 새 시집 구매 인증샷과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시를 찍은 사진을 부지런히 SNS에 올리고 있다.

특히 난해한 표현 없이 인생의 여러 애환을 그린 보편적인 이야기와 사랑과 연애에 관한 뻔뻔스러울 정도의 솔직한 표현에 중장년층 독자들까지 호응하는 모습이다.

역시 페이스북 팔로워가 1천 명이 넘는 오은(34) 시인이 지난달 8일 출간한 새 시집 '유에서 유'도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말장난과 비슷한 재미있는 언어유희와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에 젊은층의 지지도가 높다.

역시 나오자마자 중쇄에 들어가 한 달 만에 8천 부를 찍었다.

올해 상반기 나온 중견 시인들의 시집도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허연(50) 시인의 '오십 미터', 김선우(46) 시인의 '녹턴'이 모두 중쇄로 5천∼6천 부씩 찍었다.

최승자(64) 시인이 4년 만에 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도 시인의 명성에 걸맞은 인기를 끌어 7천 부나 찍었다.

최근 출간된 '섬진강 시인' 김용택(68)의 새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도 시인의 유명세가 높은 데다 이번 시집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벌써 관심이 높다.

출판사 창비는 초판 3천 부에 더해 추석 연휴가 지난 뒤 중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렇듯 시집의 인기가 최근 높아진 것은 끊임없는 생존경쟁과 구직의 어려움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한 시대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생을 관조하고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 구절에서 정서적인 위로와 치유를 구하려는 욕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권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문·사회과학서나 소설에 비해 바쁜 시간을 틈타 금방 읽을 수 있는 시집은 접근성이 훨씬 높다.

이에 더해 지난해 말부터 고전 시집의 복간·초판본이 뜻밖의 열풍을 일으키면서 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다시 끌어오기도 했다.

작년 말부터 출간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백석의 '사슴'은 인터넷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빛나는 서정성을 간직한 고전 시들이 이 시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했고 명작 시집을 옛 모습으로 소장하려는 욕구가 더해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열기를 타고 시집 전문 서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유희경 시인이 서울 신촌에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열었고, 지난 7월에는 대구에서 정훈교 시인이 '시인보호구역'이라는 시집 전문 서점을 열었다.

특히 '위트 앤 시니컬'은 시인이 직접 참석하는 낭독회를 자주 열어 개점 초기부터 시 독자들을 불러모으면서 3개월째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 독자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으며 매출도 순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박준, 황인찬 등 젊은 시인들의 활동이 눈에 띄고, 이성복, 김사인 등 애송시가 많은 시인의 인기도 지속하고 있어서 감성적인 계절인 가을을 맞아 시집을 찾는 독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