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타의 온에어 시리즈 중 ‘뉴욕 파크가’.
김아타의 온에어 시리즈 중 ‘뉴욕 파크가’.
하루 종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뉴욕 파크가. 그러나 대낮인데도 인파는 종적을 감췄다. 마치 텅 빈 유령 도시 같다. 어떻게 이런 이미지가 가능할까. 비밀은 8시간 노출에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노출하면 사람의 궤적이 살아있지만 장시간 노출하면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정지 물체만 기록에 남는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아타의 작품은 늘 세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오는 9일부터 2월7일까지 서울 신사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리-아타(RE-ATTA)’전은 김씨가 6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 있는 우리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해준다.

2000년 이후 ‘뮤지엄 프로젝트’와 ‘온 에어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그는 이번 전시에 ‘8시간 시리즈’ 등 세 가지 카테고리의 작품 40여점을 내놓는다. 6년 칩거의 결과물이다. ‘8시간 시리즈’는 작가가 뉴욕, 베이징, 뭄바이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특정 장소를 방문해 조리개를 8시간 열어 둔 채 사진을 찍어 인적이 사라진 도시의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작가의 사유를 담은 것이다.

‘인달라 시리즈’는 ‘온 에어 프로젝트’의 대미다. 인달라는 ‘인드라망’과 같은 말로 우주의 모든 것은 그물처럼 얽혀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뜻. 작가는 수많은 이미지를 겹쳐 최종 이미지를 얻었다.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찍은 사진을 수백장에서 수만장까지 중첩한 것. 최종 결과물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모노톤의 추상으로만 남았다.

이 밖에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는 파르테논 신전 등 역사적 의미를 지닌 조형물들을 얼음조각으로 만들어 그 조각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다.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된다는 주제를 담았다.

자신의 작업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 그는 “내 작업의 핵심은 빛에서 색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색에서 빛을 찾는 것, 즉 사물에서 본질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9월에 열릴 전시에서는 ‘자연의 드로잉 시리즈’를 내놓을 예정이다. 그동안 자신의 철학을 표현해 온 카메라를 내려놓고 자연에 그 작업을 맡기겠다고 했다. 한국 비무장지대, 일본 히로시마 원폭 현장에 텅 빈 캔버스를 일정 기간 세워 놓고 자연이 남긴 흔적을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자연이 스스로 본질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02)3446-3137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