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투자전문회사(PEF)는 우호적인 대주주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두산그룹 4개사에 투자한 '오딘 홀딩스'의 49%는 미래에셋과 IMM이 보유하고 있으며,아이리버(구 레인콤)의 경우는 보고펀드가 32.44%의 1대주주이면서 창업자의 전문 경영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러한 투자 형태를 선도했던 펀드가 KKR다. 최근 오비맥주를 인수해 국내에도 진출한 KKR를 다룬 《KKR 스토리》가 출간됐다. KKR의 내부 자료와 다양한 인물 인터뷰를 통해 KKR의 역사와 투자기법 등을 정리한 책이다.

KKR의 대표인 헨리 크라비스 같은 유대인들은 공동투자 계약에 익숙하다. 크라비스는 골드만삭스와 베어스턴스를 거쳐 KKR를 창업했는데,석유사업이 붐을 이루던 1925년 오클라호마로 이주했던 부친에게서 석유사업 지분의 대부분을 소유하되 나머지를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주주들과 공유하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KKR는 적대적 M&A(인수 · 합병)가 횡행하던 1980년대에 '백기사' 역할로 돈을 벌기 시작한 셈이다. 또 창업주가 은퇴할 나이가 됐는데 상속받을 자식이 없는 경우 이사와 상무들이 회사를 인수하는 소위 '경영자 인수(management buy out)'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개인들이 기업을 인수할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므로 KKR는 기업인수금융을 주선하고 우호주주로서 지원했다.

백기사든 '경영자 인수'든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KKR는 레버리지를 활용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부터 '부채의 상인(merchant of debt)'이라 불리기도 했다. KKR는 인수 차입금 상환을 위해 피인수 기업을 상당히 '모질게' 다뤄 경비를 절감하고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도록 강제했다.

이 책은 그러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아주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KKR의 레버리지가 피인수 기업에 부과하는 '부채의 규율'은 피인수 이후 1~2년 동안은 적대적 인수에 필적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자산의 구조조정,감원,인력교체 및 자산매각으로 인해 개인의 생활이 엉망이 되고 때로는 지역사회에도 고통을 주었다.

KKR는 수시로 월스트리트에서 회사채 발행과 기업공개를 수행하고 유수의 투자은행들을 자문사로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사업부 매각에는 최고의 '솜씨'를 발휘했다. KKR는 초기 투자에서 전문경영자들에게 주식을 배정해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현재는 일상화된 것이다.

KKR는 1989년 K-III 홀딩스를 설립함으로써 현직에서 물러난 경영자들과 함께 인수 파트너십을 결성한 최초의 레버리지드 빌드업을 구사했다. K-III의 경영자들은 1989~1994년 745개 미디어 회사를 인수대상으로 검토하고 63개의 사업을 총 28억달러에 인수하는 활동을 보였다. 미디어 업종에서의 빌드업 전략은 국내에서도 SO 업종에서 골드만삭스와 맥쿼리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

KKR는 오비맥주 인수 후 현재의 경영진 체제를 유지하면서 구조조정보다는 설비투자나 영업,마케팅 등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신제품을 만들고 시장점유율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국내에서 PEF의 역할이 중차대해지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은 PEF와 경영자의 '파트너십'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임우돈 한국CFO협회 사무총장 · 건국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