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은 장차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마음을 믿는 게 아니라 지금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그대로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언젠가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래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며 이 마음을 쓰기만 하면 부처가 된다는 것이지요." 주말인 지난 7일 저녁 대구 지역의 대표적 사찰인 팔공산 동화사 설법전.황금연휴의 한가운데에 끼인 토요일인데도 3백50여명의 스님과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불교사상의 정화'로 꼽히면서도 방대한 분량과 내용의 난해함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친숙하지 못한 화엄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1백여명의 스님들은 설법전 실내에 앉았지만 신자들은 마루와 설법전 앞마당에 자리 잡았다. '화엄논강(論講)'의 네번째 자리로 마련된 이날 논주(論主)로 초청된 해주 스님(동국대 교수)이 발표한 주제는 '화엄경의 구조론'.60권 80권 40권 등으로 구성된 화엄경의 구조를 차근차근 설명한 해주 스님은 참석자들이 무작위로 던지는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승기신론과 화엄경에서 신심을 일으키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 해주 스님은 "답은 성기(性起) 사상에 있다"고 했다. 성기 사상은 연기법을 뛰어넘는 것으로 인(因)과 과(果)가 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화엄의 세계에서는 수행의 방편이 아닌 것이 없는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연꽃의 처염상정(處染常淨·어떤 더러움에 처해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연꽃은 꽃이 필 때 연밥이 같이 익어가므로 인과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요. 따라서 먼 미래에 성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살행을 실천하는 순간 부처로 살게 된다는 것을 화엄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의 현대적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환경과 생태,흑백·남녀·노사문제 등 현대 사회의 온갖 갈등을 화해시키는 중요한 정신이 화엄경에 들어 있다"며 보살도의 실천을 강조했다. 해주 스님의 이같은 견해에 대해 각묵 스님은 '임제록'에 나오는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今 更無時節·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이 없다)'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본래 부처이므로 지금 여기서 바로 부처의 행(行)을 실천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이날 논강은 저녁 9시를 훨씬 넘어서야 끝이 났다. 해가 지면서 산사의 공기는 싸늘해졌지만 설법전 앞마당에 앉은 청중들은 조금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채 논강에 빠져들었다. 지난달 17일 첫 모임을 가진 '화엄논강'은 오는 8월9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세시간 동안 계속된다. 그동안 화엄경의 성립,화엄경과 선 등을 다룬 데 이어 화엄경의 사상론과 연기론 실천론 성불론 주석론 등을 잇달아 다룰 예정이다. 대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