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마시는 이방인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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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31번째 장편 <여행자의 필요> 리뷰

하나 분명한 게 있다면 그가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생김새뿐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쉽사리 동질감을 느끼기 어렵다. 이 이방인은 두 명의 한국인 여성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돈을 번다.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어 교습을 명목으로 자기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삶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친다. 세상이 수많은 언어로 이뤄져 있듯 남의 시선에 의지하지 않는 자기만의 언어를 찾으라는 권유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를 밟고 인간세계로 내려오는 신들의 전령 이리스란 이름은 찰떡같이 어울린다.

이리스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대화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프랑스어 교습에서 잘 나타난다.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학생의 속마음을 묻고 이를 종이에 적어 외우라고 건넨다. 마음이 열려야 다른 언어가 들어온다는 그만의 교수법이란다. 첫 번째 학생인 젊은 여성인 이송(김승윤)이 피아노를 치자 이리스는 집요할 정도로 속마음을 캔다. “어땠어?”, “뭘 느꼈어?”란 그의 물음에 “자랑스러웠다”던 이송은 이내 난처한 듯 “사실 조금 짜증 났어”라며 숨겨둔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원주 역시 이리스 앞에서 기타를 연주했다가 무엇을 느꼈다는 질문에 “제가 뭘 느꼈을까요”라고 되묻다가 결국 이송과 똑같은 답을 내놓고 무장 해제된다. 피아노가 기타로 바뀌고, 젊은 여성이 중년으로 바뀌었을 뿐 다를 게 없는 상황. 자기 내면을 마주 보는 대화를 나눌 줄은 모른 채 남들이 정한 정답만 따라가려는 모습을 비꼬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이리스는 이송, 원주, 인국의 정확한 안티테제다. 그는 와인보다 생막걸리를 즐기고, 오랜 세월 챙 넓은 모자를 좋아해 왔다는 걸 타인에게 정확히 설명할 줄 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고 순수하게 배워가는 점에서도 다르다. 이리스를 통해 홍상수는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라는 낯선 세상을 여행하듯 알아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