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아르떼필 선율에 日 '장미의 마을' 아이들이 외쳤다 "감사합니다"
5월의 후쿠야마는 짙은 장미 향기로 둘러싸인다. 장미가 후쿠야마의 상징이 된 사연은 2차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합군의 대공습으로 폐허를 경험한 시민들이 1956년 자신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1956년 1000그루의 장미를 심은 것이 모태가 되었다.

후쿠야마에 있는 유일한 콘서트홀 이름 또한 도시의 상징을 딴 ‘갈대와 장미 콘서트홀’이다. 25년 전 개관한 이 공연장의 음향은 우리나라의 롯데콘서트홀을 담당했던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음향설계사 도요타 야스히사가 담당했고 여전히 그의 감독 아래 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물론 음악대학도 없는 이 도시에서 클래식 음악은 낯선 취미였고, 이 보석같은 어쿠스틱을 가진 콘서트홀에서는 한동안 엔카 경연 대회같은 확성기를 이용한 대중 공연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곳에 클래식 음악이라는 본연의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2018년 후쿠야마 국제음악제가 개최되면서부터다. 매해 5월 국내외 주요 오케스트라와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밀도 높은 공연을 펼치지만, 올해는 특히 한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호스트 악단으로 초대하며 한일간의 문화교류에 특히 역점을 둔 모양새다. 아스펜 기획사의 시게타 회장은 올해 음악제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한경아르떼필 선율에 日 '장미의 마을' 아이들이 외쳤다 "감사합니다"
[사진 설명] 일본 후쿠시마에서 5월 9~12일 개최되는 국제음악제의 포스터. 포스터의 상단에 "260년의 시간을 넘어 21세기 조선통신사가 지금 후쿠시마에"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후쿠시마 국제음악제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사진을 포스터의 가장 상단에 배치하고 지휘자 박영민과 바이올리니스트 최주하를 그 옆으로 소개했다.

“조선 시대 일본으로 파견되는 조선통신사는 늘 후쿠야마를 거쳐 갔습니다.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적지도 여러 군데 남아 있죠. 경색되어 가는 한일간의 관계를 문화로 풀어보고 싶은 마음에 한경필과 한국 음악가들을 초대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많으니까요.”

후쿠야마 음악제는 지역 청중들의 교육에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더 많은 시민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훗날 공연장을 찾아올 미래 청중을 개발하고자 노력한다. 한경 필 또한 성악곡을 제외하고 개막 콘서트와 거의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스쿨 콘서트를 먼저 진행했다. ‘미래를 이을 어린이를 위한 콘서트’라는 제목 아래 5월 9일부터 10일까지 세 차례 열린 공연은 초대받은 후쿠야마 도시 내 초등학교 5학년 재학생들로 이틀 내내 문전성시였다.
한경아르떼필 선율에 日 '장미의 마을' 아이들이 외쳤다 "감사합니다"
클래식 음악, 특히 오케스트라처럼 스펙터클한 무대 자체가 이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이벤트인지라 학생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 내내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종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고 지휘 동작을 수줍게 따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아이들이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오케스트라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을 때 지휘자 박영민과 단원들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5월 11일 열린 개막 공연도 분위기는 여전했다. 객석은 아이들 대신 성인들로 가득 찼지만 차분하면서도 들뜬 호기심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한경필의 프로그램은 청중들의 수준과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첫 곡으로 연주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은 후쿠야마의 명물인 코모리(박쥐)산을, 같은 작곡가의 ‘남쪽 나라의 장미’와 비제의 ‘꽃노래’(테너 엄성화 협연)는 도시의 상징인 장미를 고려해 선곡한 것이었다. 그밖에 ‘봄의 소리’ 왈츠(소프라노 샤론 킴 협연)와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 등 익숙한 선율은 청중들 사이에서 진지하면서도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네 번의 콘서트를 무사히 마친 박영민 지휘자와 한경필은 5월 12일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아일랜드 피아니스트 배리 더글러스와 함께 음악제의 하이라이트인 폐막 무대에 설 예정이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