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액수도 액수지만 ‘방향’이 중요합니다. 바이오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초기-중기-말기로 이어지는 투자가 중요한데 지금은 그런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이 보이질 않습니다.

-국내 바이오기업 A사 대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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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산업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미래 먹거리’ 중 하나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개인위생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높아졌고, 노령인구 비율이 급격히 늘어가며 바이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잠재력은 이미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개발한 세계 3번째 국가입니다. 신약 후보물질은 2018년 573개에서 2022년 1883개로 배로 뛰었고 역량이 뛰어난 의사, 과학자들도 꾸준히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바이오 산업이 몇몇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고사 직전’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입니다.

바이오 산업은 제조업과는 결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임상시험이라는 ‘돈 먹는 하마’와 평생 동행할 수밖에 없는데, 그 하마가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전문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바이오 산업 강국인 미국·유럽 등과의 네트워킹도 중요합니다. 작은 벤처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요소들 투성입니다. 정부의 제대로 된 육성책이 그 어느 업계보다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난 1월 방문한 서울 서초에 있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협회장은 "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남정민 기자
지난 1월 방문한 서울 서초에 있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협회장은 "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남정민 기자
지난 1월 3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6년간 이끌어 온 원희목 회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약대 출신인 원 회장은 2017년 2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대한약사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보건산업계에 몸담은 기간만 40여 년에 달합니다.

원 회장은 “전략적인 연구개발(R&D) 투자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제약·바이오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던 정부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초고속 작전’에 예산 14조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기 때문입니다. 14조원의 지원이 90조, 100조원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동일선상의 비교는 어렵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는 아니지만 한국 정부도 할 수 있는한 최대한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이어 원 회장은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임상 2,3상에 정부 R&D 투자가 필요하며,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R&D 투자비도 회수하기 힘들 정도의 보상체계로 신약개발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가 늦춰지면서 민·관 소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한국바이오협회도 바이오 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지난 9일 발표했습니다.
암, 희귀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타깃으로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혁신적인 의약품이 개발되고 있으나 이러한 의약품은 고가이고, 대부분 미국 및 유럽 등 선진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 분야 VC 신규투자가 전년 대비 34.1% 급감하는 등 민간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위해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세제 지원 강화를 통해 민간의 투자를 적극 유인해야 한다.

-한국바이오협회
신약 기술 개발에만 10년이 걸리는 바이오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투자자금 회수에도 오랜 기간이 걸리는만큼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정부가 바이오 육성정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바이오헬스 산업을 키우기 위해 5000억원 규모로 시작하겠다던 메가펀드는 그 청사진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해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고 3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인력 지원도, 연구개발 지원도, 자금 지원도 피부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학계나 연구기관에 대한 투자도 좋지만 기업들이 실제로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기술력 때문이 아니라 지원 부족으로 꽃도 못 피워보고 접어버리는 프로젝트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진짜 바이오를 미래 먹거리로 키울 것이라면 산업 현장에도 좀 와보고, 실제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곳에서 어떤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보여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국내 바이오벤처 B사 대표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