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부총장(뒷줄 가운데)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3종을 발견했다. /KAIST 제공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부총장(뒷줄 가운데)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3종을 발견했다. /KAIST 제공
코로나19 4차 대유행(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불안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9일 기준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400만 명을 넘었다는 소식도 나왔다. 현재 코로나19 표준 치료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렘데시비르(상품명 베클러리)다. KAIST 등에 따르면,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 환자 사망률을 크게 낮추지는 못하고 있다. 미투여군보다 회복 기간을 5일 정도 단축시키는 데 그칠 뿐이다. 병원에 입원해 수차례 맞아야 하는 정맥주사여서, 신속한 투여가 가능한 경구용 치료제(복용약)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와 한국파스퇴르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약물 재창출로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3개를 새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을 놓고 새로운 효능을 찾는 약물 재창출은 신약 개발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팬데믹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이던 렘데시비르도 약물 재창출 과정을 거쳐 코로나19 치료제로 거듭났다.

연구팀은 FDA 승인 약물을 토대로 구축해 온 화합물 데이터베이스(DB) 6100여 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발굴에 착수했다. 바이러스에 존재하는 표적 단백질과 약물 간 결합 방향 및 에너지, 결합 세기 등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최적 물질을 가려내는 ‘도킹 시뮬레이션’ 기술을 사용했다. 우주선이 국제 우주정거장에 정확히 결합하는 것에 빗대 이름이 붙었다. 문제는 도킹 시뮬레이션이 실제 도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1~3%로 낮다는 점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단백질-약물 도킹 전후 구조와 주변 상호작용 분석 모델을 새로 개발해 도킹 시뮬레이션 정확도를 18%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약물이 활성화될 때 순간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복제와 증식에 필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약물 15종과 바이러스 리보핵산(RNA) 관련 효소를 저해할 수 있는 약물 23종을 선별했다. 이렇게 추려낸 총 38종의 효능을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 검증했다. 코로나19를 감염시킨 원숭이 신장세포를 이용해 시험관 내(in vitro) 실험을 해보니 7종에서 항바이러스 활성이 확인됐다.

이 7종의 약물을 인간 폐세포에 주입해 추가 실험을 한 결과 △특발성 폐섬유증 등으로 임상이 진행 중인 ‘오미팔리십’ △조로(早老)증 등으로 임상 중인 ‘티피파닙’ △식물추출물 성분으로 항암제 임상 중인 ‘에모딘’ 총 3종이 코로나19 치료제 신약 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모두 경구 투여가 가능한 약이다. 오미팔리십은 렘데시비르 대비 항바이러스 활성이 200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티피파닙은 렘데시비르와 항바이러스 활성이 유사했다.

물론 이는 시험관 차원의 연구 결과라 앞으로 동물실험(전임상)과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상엽 특훈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가상 스크리닝 플랫폼은 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때도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상세포 분석을 통해 생명체를 연구하는 시스템생물학과 바이오매스로부터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대사공학의 세계적인 전문가다. 지난 5월 한국인 최초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면서 미 공학한림원, 미 국립과학원, 왕립학회 회원 자격을 모두 보유한 유일한 한국인이 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