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련 부처들이 연말까지 규제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서 한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한 이용자가 3일 웨이즈 앱(응용프로그램) 화면에서 온라인 환전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를 확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 이용자가 3일 웨이즈 앱(응용프로그램) 화면에서 온라인 환전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를 확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오는 8일 온라인 환전 서비스(웨이즈)를 중단하고 사업을 접기로 한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그레잇 측 얘기다. ‘허용하는 것 빼고는 다 안 되는’ 정부의 포지티브 규제에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 오랜 고민 끝에 사업 중단까지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웨이즈는 시중은행처럼 지점 운영비 등이 필요 없어 환전수수료가 시중은행보다 최대 50% 싸다. 24시간 환전 예약도 할 수 있어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출시 1년 만에 누적 거래액 300억원, 가입자 10만 명을 넘어섰다.

환전·빈집공유·카풀 "되는 게 뭐냐"…대통령 말에도 '꿈쩍않는 규제'
그레잇이 폐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업 확장이 촘촘한 정부 규제에 막혀서다. 이용자 범위를 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확장하려고 했지만 외국인 이용자의 경우 국내 은행 계좌가 필요하다고 당국은 고수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핀테크 스타트업에서는 환전이라고 주장하지만, 자금에 국경 간 이동이 있으므로 이것은 송금이라고 봐야 한다”며 “자금 세탁 등 위험이 있어 송금 라이선스를 따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무적인 요건만 맞추면 허가, 인가도 아니고 등록할 수 있어 규제라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레잇 관계자는 “그럼 기존 은행과 다를 바 없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혁신 서비스가 정부의 포지티브 규제에 막혀 좌절한 것은 웨이즈뿐만이 아니다. 공유숙박, 공유차량 등 공유경제 분야의 새로운 서비스 사정도 다를 바 없다.

농어촌 빈집을 장기 임차해 숙박시설로 리모델링한 뒤 공유하는 사업을 벌이던 다자요는 지난 7월 사업을 중단했다. 실거주자만 농어촌 민박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농어촌정비법의 규정 때문이었다.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법’이 된 다자요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위츠모빌리티는 8월 카풀 서비스 ‘어디고’를 중단했다. 평일 하루 4시간만 카풀 서비스 운영이 가능하다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사실상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워졌다. 기존 법규에서는 출퇴근 때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 유상 여객운송이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에 규제를 없애기는커녕 더 강화해버렸다.

꼬리를 무는 ‘혁신 잔혹사’는 정부 관료들이 포지티브 규제의 완고한 틀에 갇혀 있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강조했지만 현장에는 혁신 의지가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 역시 지난달 30일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쏘카는 타다 서비스를 운영 중인 VCNC의 모회사다. 타다는 이용자가 130만 명이 넘는 렌터카 기반의 차량 호출 서비스다.

그는 “국토교통부가 진심으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받아들였다면 타다를 포용하고, 타다가 가져올 사회적 문제나 피해 등을 평가해 이에 맞는 제도를 후행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며 “그럼 이렇게까지 갈등이 증폭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산구 한국공유경제협회장은 한국에서 혁신이 불가능한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규제의식’을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공유 기업인) 그랩 같은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이 나오지 않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규제 때문”이라며 “심지어 명문화되지 않은 해석, 취지라는 이유로 온갖 혁신의 길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