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일단 중단됐지만, 이번 내란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의 위기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그가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보다 내란 진압에 화력을 집중 것이란 관측이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이번 일로 푸틴 대통령의 시선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국내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군에 플러스"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인 전망은 알 수 없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푸틴 대통령의 권위가 크게 훼손된 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SNS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녹화방송이었고, 그는 이미 도망갔다'는 식의 조롱 포스팅이 퍼져 푸틴 대통령의 추락한 지위를 보여줬다.

이날 바그너 용병들이 장악했다 떠난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노두에서는 용병들을 피해 몸을 숨겼던 러시아 경찰들이 치안 유지를 위해 돌아오자 시민들이 저항하는 일도 발생했다. 시민들은 자신들을 내버려 둔 채 도망친 공권력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게 손뼉을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 봄 대선을 앞둔 러시아에서 추가 내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의 중재를 통해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입건을 취하하고 바그너 용병들에 대한 기소도 철회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푸틴 정부와 바그너 그룹 양측이 물밑에서 움직임을 이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질 도허티 전직 CNN 모스크바 지국장은 CNN에 "향후 프리고진이 (푸틴 정부의 패망을 원하는 서방 국가 등) 어딘가로부터 지원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위협이 계속 되면 푸틴 대통령에겐 엄청난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내란 사태를 2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 직전의 독일에 비유하는 분석도 제기됐다. 전쟁 말기 무렵인 1944년 7월 독일에서 반(反)히틀러파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 미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이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도 유명한 이 사건은 당시 쿠데타 세력의 대규모 축출로 마무리됐지만,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독일의 패전으로 세계대전이 끝났다. 프리고진이 올해 초부터 '러시아 정부의 무능함 때문에 러시아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푸틴 정권에 반기를 품기 시작하는 등 반란 배경도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이번 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로브 리 선임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 전투 이후 5월 말이나 6월 초 이미 바그너 병력은 최전선에서 철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바그너는 방어보다 공격을 위해 기획된 용병 조직이고 이번 일이 전쟁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 군대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맞서 점령지를 충분히 방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