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자 쥐 대상 우울증 실험…'환경이 유전 능가'

유전자는 바뀔 수 없는 운명인가? 특정 질병 유전자가 있으면 도저히 발병을 피할 수 없는가?
그러나 현재로선 모든 유전병은 아니지만, 일부의 경우 좋은 환경과 치료로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파인버그 의학대학원 심리행동과학부 에바 레들 교수는 후천적 환경을 통해 선천적 우울증 성향을 바꿀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최근 미국 정신의학회지(Translational Psychiatry)에 실었다.

이른바 '천성과 교육 또는 유전과 환경'(nature & nurture) 가운데 환경이 유전의 영향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일 메디컬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레들 교수는 비록 동물실험 결과이며 더 조사할 필요는 있으나 이번 연구는 집안 내력에 강력한 우울증 유전인자가 있더라도 심리치료나 행동활성요법 등으로 이를 예방 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선 우울증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들과 환경적 영향들이 서로 다른 분자연결경로를 통해 생체 내에서 작동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울증에 걸리도록 만든 쥐들과 환경을 바꿔 우울증에 걸리게 한 쥐들의 혈액 속의 우울증 발현 생체지표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규명했다.

이로써 두 종류 우울증을 구별, 더 정밀한 약물 및 심리요법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레들 교수팀은 유전자 조작으로 33세대에 걸쳐 우울증을 발현하는 쥐를 만들었다.

이 쥐들은 극도의 절망감을 행동으로 표출했다.

이 우울증 쥐들을 씹고 놀 장난감이나 숨고 오르고 할 장소가 많은 우리에 넣었다.

일종의 '쥐의 디즈니랜드'다.

레들 교수는 "우리는 이를 쥐 심리치료라고 규정했다"면서 "쾌적하고 풍부한 환경 속에서 다른 쥐들과도 더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한 달간 놀게 하니 쥐의 우울증 증상이 극적으로 크게 줄었다.

이후 이들 쥐를 꺼내 물탱크 속에 넣었더니 탈출구를 찾으려 수조 속을 활발하게 헤엄쳤다.

정상 쥐들과 같았다.

그러나 '디즈니랜드'에서 치료받지 않은 선천적 우울증 쥐들은 물탱크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물 위에 떠 있으며 절망감을 표출했다.

이번엔 선천적 우울증 성향이 없는 일반 쥐들을 대상으로 환경이 우울증을 일으키는지를 실험했다.

일반 쥐들에게 2주 동안 매일 2시간씩 행동에 제약을 가하며 지속적이고 강한 스트레스를 줬다.

이들 쥐를 물탱크에 넣자 도망칠 생각도 못 한 채 물에 그냥 떠 있었다.

일반 쥐들의 혈액 속 생체지표를 재어 보니 당초 비(非)우울 수준이었으나 환경 스트레스를 받은 이후엔 유전자 조작 쥐들만큼 높은 우울 수준으로 바뀌었다.

레들 교수는 앞으로 이런 생체지표들이 환경에 대응하는 행동변화의 실제 원인인지를 판별하는 연구가 필요하며, 만약 그런 것으로 확인되면 우울한 쥐 생체지표의 수준을 비우울 쥐들의 수준으로 바꿔주는 새 약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