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올해 첫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끝나고 나온 성명서의 총 단어 수는 569개였다. 2012년 10월 이후 2년3개월(회의 횟수 기준으로는 18번) 만에 가장 짧은 성명서였다. 내부적으로 이견이 없는 회의였다는 방증이란 해석이다. 반면 작년 9월 FOMC 성명서의 단어는 895개로, 이번 회의 때보다 1.6배나 많았다. 최근 3년간 열렸던 FOMC 성명서 가운데 가장 길었다. 미국 중앙은행(Fed) 내부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사라진 매파…10명 중 9명이 ‘비둘기’

핵심 변화는 Fed 통화정책의 조기 정상화를 주장해 온 ‘매파’의 급격한 퇴진이다. 대표적 ‘매파’ 주자로 꼽히는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와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가 의결권을 잃은 반면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와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등이 올해 새로 투표권을 얻었다.

FOMC 위원은 모두 12명으로 구성된다. 재닛 옐런 의장을 포함한 Fed 이사 7명(현재 2명 공석)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12명의 지역 연방은행 총재 중 5명이 매년 돌아가면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상임위원이라 실제로는 11명 중 4명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위원 자격을 얻는다. FOMC 회의에는 12명의 지역 연방은행 총재들이 다 참석하고 의견도 내지만, 의결권은 이들 5명만 갖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여덟 번의 FOMC 회의에서 다섯 번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대부분 ‘매파’였다. 지난해 9월에는 양적 완화 축소 종료를 놓고 FOMC 위원 간 격론이 벌어지면서 2명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지난해 12월 기준금리 방향을 시사하는 선제적 지침(포워드 가이던스)을 변경할 때도 7 대 3으로 찬반이 갈렸다. 반대파의 주장을 소수 의견으로 제시하다 보니 성명서 분량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올 들어 1월 첫 회의부터 만장일치 결정이 나온 것은 ‘슈퍼 비둘기’로 불리는 옐런 의장 쪽으로 FOMC 위원 구성이 일방적으로 짜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분석에 따르면 FOMC 위원 중 매파는 제프리 래커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가 유일하다. 라엘 브레이너드, 제롬 파월, 대니얼 타룰로 등 3명의 Fed 이사가 중도로 분류되고, 나머지 6명은 모두 비둘기파다. Fed 이사가 ‘직속상관’인 옐런 의장에게 반기를 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9 대 1의 일방적 의사결정 구조가 짜였다는 평가다.

‘매파’ 플로서·피셔, 총재직서도 물러나

물가를 중시하는 ‘매파’ 플로서 총재와 피셔 총재는 올해 의결권만 잃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연방은행 총재직에서 물러난다. 플로서 총재는 지난해 일찌감치 올 3월에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피셔 총재도 Fed의 임기 규칙에 따라 오는 4월 자리를 비워야 한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과 12월 회의에서 금리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Fed의 정책 결정에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비둘기 둥지' 된 FOMC…성명서 짧아지고, 강경파는 1명뿐
때마침 3월과 4월 회의에선 기준금리를 언제 올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옐런 의장은 지난해 12월 FOMC 회의 후 성명서에 담긴 ‘인내심’의 의미를 “앞으로 두 번의 FOMC 회의에서는 금리 인상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만약 오는 6월에 기준금리를 올리기로 한다면 적어도 3월 FOMC 회의 성명서에선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삭제해야 한다. 5월엔 FOMC 회의가 없다.

일각에선 금리 인상을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FOMC 내부에서 매파 위원이 거의 ‘전멸’하다시피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Fed가 설정하는 기준금리 범위가 낮아지거나 아예 올해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WSJ는 매파 위원들이 빠지면서 Fed가 설정하는 올해 기준금리의 전망 범위가 당초 예상했던 연 1.25~1.50%에서 연 1.00~1.2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0.0~0.25%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FOMC 성명이 나온 직후 “올해 중반 금리 인상이 점점 불가능해 보인다”며 “Fed의 첫 번째 금리 인상 전망 시기를 내년 1월에서 3월로 늦춘다”고 밝혔다.
'비둘기 둥지' 된 FOMC…성명서 짧아지고, 강경파는 1명뿐
공석인 2명의 Fed 이사 등 변수

전문가들은 Fed의 의사결정이 절대적 권위를 가진 한 명에 의해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FOMC 위원들의 집단적 지혜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통상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는다며 Fed의 ‘자정 능력’을 강조한다. 1929년 대공황 이후 효과적인 정책 대응을 위해 1935년 은행법을 고쳐 지역 연방은행 총재들이 FOMC에서 표결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도 Fed의 일방적 결정을 견제하기 위한 취지라는 설명이다.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나 윌리엄스 총재처럼 ‘온건 비둘기파’로 분류된 인사들이 매파 성향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윌리엄스 총재는 지난달 16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6월께 금리 인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추론 같다”고 말해 다른 비둘기 성향의 위원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리처드 피셔 총재와 플로서 총재 후임이 누가 될 것인지도 관심이다. 두 지역 연방은행 이사회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매파 성향의 총재를 뽑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변수는 아직 비어 있는 2명의 Fed 이사에 누가 임명될지다. 이 중 한 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앨런 랜던 뱅크오브하와이 전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하면서 윤곽이 잡혔다. 랜던 전 CEO가 어떤 정책 성향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 美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美 금리·통화정책 결정…韓銀 금통위의 모델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변경 및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의사기구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는 FOMC를 본떠 만들어졌다.

FOMC는 1913년 Fed가 설립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929년 대공황을 거치면서 Fed가 금융위기를 예방하기는커녕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충격을 약화시키지도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중앙은행 개혁 차원에서 구성됐다.

애초에는 뉴욕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지역 연방은행 총재들에게 표결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Fed와 뉴욕 연방은행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1935년 은행법을 개정해 지역 연방은행 총재들도 돌아가면서 표결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뉴욕을 제외한 각 지역 연방은행이 △보스턴 필라델피아 리치먼드 △클리블랜드 시카고 △애틀랜타 세인트루이스 댈러스 △미니애폴리스 캔자스시티 샌프란시스코 등 4개 그룹으로 나뉘어 매년 돌아가며 표결권을 갖는다.

FOMC 회의는 매년 최소한 네 차례 열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1981년 이후엔 매년 5~8주 간격으로 여덟 번 열리고 있다. FOMC에 참여하는 Fed 이사는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7명이다. 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미 의회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임기는 14년이며 재임할 수 없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