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고,주요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빠르게 호전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의 조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한국이 가장 먼저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바닥을 지났다'는 장밋빛 전망도 쏟아진다. 때 이른 축포일까,아니면 한국 경제의 체질이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와 달리 정말로 강해진 것일까.

한국경제신문은 28일 한국을 방문 중인 존 프레스보 다우존스 인덱스 대표이사와 만나 한국 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과 기업들의 지속성장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이날 다우존스 인덱스가 스위스 샘사와 함께 기업들의 재무적 가치를 비롯해 환경 · 사회적 가치를 종합 평가하는 지속가능경영지수인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를 국내에 도입하는 설명회가 열린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VIP룸에서 이뤄졌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주관했다. 프레스보 대표는 "앞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경기는 W자형 회복의 중간지대를 지나는 중

▷월 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한국이 빠르게 불황을 비켜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른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을 밝게 전망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순외채 등을 거론하며 비관론을 제기하던 해외 언론들의 논조가 갑자기 바뀐 이유는 뭔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의 경기전망이 밝다는 데 동의한다. 아시아권 국가들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이번 글로벌 불황의 그림자에서 조금 비껴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아시아 지역의 금융회사들이 서구권 금융회사들보다 파생상품 등의 투자가 적었던 데 있다.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시아권 기업들이 그간 유기적인 성장을 통해 기반을 다져온 것이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은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시아권 국가들의 빠른 경기회복을 앞당기고 있다. "

▷앞서 제조업을 언급했는데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지난 1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을 냈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LCD(액정표시장치)와 반도체,휴대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도 크게 높이고 있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한국의 조기 경기 회복 가능성이 확산되고 있지만,한쪽에서는 환율효과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기업들이 환율효과를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원화가치 하락에 의한 가격경쟁력 우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실적은 원가절감 등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기업이 원가절감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어야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 다행히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와 휴대폰 등에서 세계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기술과 품질 경쟁력이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최근들어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앞으로 V자형이나 L자형 회복이 아니라 급격히 경기가 하락했다가 완만하게 회복되는 나이키 커브 같은 회복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우리가 바닥에 와있는 것인가,아니면 이미 완만한 회복세에 들어서 있는 것인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W자형의 경기회복 양상을 나타낼 것이라고 본다. 도이치뱅크 홍콩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존 마 박사가 이런 전망을 내놨는데,급격한 경기 하락을 겪은 뒤 가파른 회복세를 잠시 탔다가 다시 하락을 거듭하고 나서 회복기를 맞을 것이라는 진단에 나도 동의한다. 우리는 지금 W자형 회복 과정의 중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회복단계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또 한차례의 조정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갑자기 시장이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W자형 회복의 끝은 내년이 될지,2011년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중국발(發) 폭풍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세계 경기가 잠시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가 다시 급격한 침체를 맞게 된다면,무엇이 주 요인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


"중국이 세계 경기의 회복과정에서 주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중국 정부는 최근 경기 진작을 위해 각종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 경기가 뚜렷한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는 이런 부양책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문제는 경기부양책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한순간 부양효과가 사라지면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동반 침체에 다시 빠져들면서 글로벌 시장의 쇠락을 이끌 수 있다. 폭풍이 지날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

▷한국 기업들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으로 이겨냈다. 하지만 요즘에는 10여년 전과 같은 구조조정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때와 달리 기업들의 내부 체질이 개선됐고,재무구조가 좋아진 이유가 크다. 한국 정부도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를 권장하고 있다. 어렵더라도 일자리를 유지해 경기추락을 떠받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데,이런 식의 한국형 위기 대처법을 어떻게 보는가.

"한국 기업들은 수출의존도가 높다. 기업들은 가격을 변화시키거나 제품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수요를 조절할 수는 없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앞장서 경기회복을 앞당길 방법은 없다. 세계 경기침체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갈 수 있는 힘은 기업의 원가절감과 자원활용 능력에 있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가운데 일자리 나누기 프로그램은 경기회복기에 빛을 발할 현명한 정책(wise policy)이다. 경기회복이 시작되면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재고용을 하기 시작하는 경쟁 기업보다 빠르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황기 때 기업의 낭비 요인을 제거하고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해서는 물론 안될 것이다. "

◆아시아 금융시장의 부상

▷세계 경제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혼돈상태를 겪었다. 이번 혼란이 지나고 나면 세계 경제에 새로운 질서가 생길 것이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질서가 어떤 모습일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앞으로 경기회복 국면이 시작되면 아시아가 많은 변화를 이끌 것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 금융회사들의 부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그간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과 유럽계가 주도해 왔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해왔던 미국 은행들은 생존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주도하던 자리를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좋은 아시아권 금융회사들이 차지하게 됐고,이 같은 경향이 앞으로 아시아 금융시장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

김현예/양윤모 기자 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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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우존스는…

뉴욕증시 대표적 지수 관리 월지 발행… 한경제휴사

다우존스(Dow Jones)는 한국경제신문과 제휴를 맺고 있는 월 스트리트 저널(WSJ)을 비롯해 마켓워치,배런스,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등 경제전문 매체를 발행하고 뉴욕 증시의 대표적 지표인 다우존스 지수를 관리하는 종합 미디어 그룹이다.

존 프레스보는 다우지수를 관리하는 인덱스 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다우존스 인덱스 부문은 30개 우량기업으로 구성된 다우존스 공업평균지수를 비롯해 국가별 · 산업별 각종 벤치마크 지수를 만들고 있다.

프레스보 대표는 1964년 월 스트리트 저널에 곡물 및 상품 선물 담당 기자로 입사해 1면 담당 편집자 및 기자,상품부문 편집장 등을 지냈다. 1993년 이후 다우존스 인덱스 부문 대표 및 편집장을 맡고 있다. 1999년 다우지수를 통해 미국 근 · 현대사를 정리한 '시장의 척도(The Market's Measure)'를 출간하는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노스웨스턴대에서 학사 · 석사학위를 받았고 1967년과 1968년에 미주리대와 로브 어치브먼트 재단으로부터 최고 경제보도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