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장관을 막후에서 지지한 이유와 배경은 뭘까.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부시 정부 핵심부 기류에 밝은 소식통들 말을 종합하면 미국이 '은밀히' 지지해온 것은 것은 분명하나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굴곡과 진통을 겪었다.

초반엔 한국 출신 인사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반기문 카드'에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드러나지 않게 지지의사를 표명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미국의 국제적 이해관계와 중국-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들과의 미묘한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불가피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미국은 지난해 10월께 한국에서 차기 사무총장 후보를 낼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간 불문율처럼 지켜져온 '대륙별 안배 원칙'에 대해 미국은 시비를 걸고 나왔다.

존 볼턴 주유엔 미대사는 '총장직 순환보임 관행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딴지를 걸었다.

볼턴은 그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입장을 되풀이했고, 아예 퇴임하는 알렉산데르 크바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을 총장 후보로 거명, '속내'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중국과 러시아 신밀월에 따른 미국과의 외교,군사적 대치 상황 움직임 속에서 동유럽의 전략적 중요성을 의식한 부시 행정부의 전략적 고려로 풀이됐다.

물론 미국이 '대륙 순환 보임'의 불문율을 파기하면서까지 차기 사무총장을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로 앉히려 한 것은 미국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하길 거부하는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사례를 감안, '미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총장'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폴란드 카드'를 버린 데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게 정설이다.

중국은 초지일관 '아시아 출신 후보만 지지할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아시아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대륙임에도 불구, 그에 걸맞은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러시아도 냉전시절 자국 영향권내에 있던 폴란드가 최근 친미 성향으로 급속 전환하고 있는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던 터라 '폴란드 카드'가 마음에 들리 만무했다.

결국 미국은 유엔의 관행을 존중, 아시아 출신쪽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후보군을 사실상 반 장관과 여성인 챈홍치 주미 싱가포르 대사 2명으로 압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볼턴 대사가 최근 "현 시점에서 출마를 저울질 중인 사람은 시간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챈 대사를 의식한 발언이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한국과의 외교적 관계 등을 감안, 후보를 내기를 주저하자 결국 반 장관 지지쪽으로 급선회한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미 이런 기류는 지난달 14일 한미정상회담 때 부시 대통령이 반 장관에게 "당신이 훌륭한 후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행운을 빈다"고 격려했을 때 어느 정도 표면화됐다.

주한 미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반 장관이 친중국 성향이라 곤란하다'는 일부 의원 지적에 "그는 프로페셔널이며, 절대 친중국 인사가 아니다"며 적극 옹호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기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이 반 외교 지지로 선회한 이유는 뭘까.

우선 그간 참여정부 출범 이후 걸끄러운 관계였던 아시아의 핵심우방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게 미 외교협회의 분석이다.

또한 반 장관은 미국의 목표와 희망을 수행하고, 유엔을 행정적으로도 개혁할 COO(Chief Operational Officer)로서의 역할에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것도 한몫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 장관은 그간 유엔을 방문해 감독 및 조달 개혁, 더 높은 책임 부여, 투명성 제고 등 유엔 개혁방안을 공약으로 제시, 유엔 회원국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국제사회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이같은 '조용한' 지지가 반 장관으로선 든든한 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지지가 차기 사무총장 고지의 9부 능선을 넘은 반장관에게 득이 된다고는 볼 수 없다.

최근 분위기를 감안할 때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 이외에도 비동맹국가 등 제3세계 국가들이 포진해 있는 유엔 총회의 추인을 받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유엔 총회에서는 안보리 이사국들이 단일 총장 후보를 추천해 오더라도 이번만큼은 그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는 '고무도장 역할'을 하진 않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조복래 특파원 cb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