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테러 협조 여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잣대가 될 것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 척결 노력에 협조하지 않는 국가는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투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여느때 같으면 다른 나라들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왔을 '협박'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공격대상인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우방국인 파키스탄이 협력 의사를 밝힐 정도로 미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어나가고 있다. 미국은 위기를 기회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장기화되는 경기부진,집권 공화당이이 상원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함으로써 부닥치고 있는 정치적 한계 등으로 어려움을 맞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점차 주도권을 회복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참사를 처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동원하는 지도력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자신감있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야도 부시의 테러 공격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부시가 요구한 피해복구 및 테러범 응징 예산 4백억달러는 물론 무력사용권도 즉각 승인했다.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유럽중앙은행에 5백억달러의 긴급자금지원라인을 설정했다. 19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쇠퇴해가던 세계 경찰국가의 이미지를 일거에 되살린 미국이 이번에도 새로운 국가로 부활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테러를 '21세기 첫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보복공격을 준비중인 미국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우리는 이슬람 또는 아랍의 이슬람권과 전쟁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며 강경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보복공격이 서방세계를 전면적인 위기로 몰고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경계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부시의 강성 기류를 견제하는 듯한 사설을 실었다. 국내에선 계속되는 경기부진이 부시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재정수지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어 장기적인 경제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8월 산업생산이 0.8% 하락,11개월 연속 떨어지는 등 경기부진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번 테러로 소비심리마저 잔뜩 얼어붙어 경기가 최악의 침체로 빠질 공산도 커졌다. 아버지 조시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걸프전에서 승리,인기가 절정에 올랐지만 경제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이번 테러 사태가 쇠퇴해가는 미국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