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10년전만해도 연이은 분신 사건 등과격 시위로 외국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과격 일변도의 시위 양상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홍콩의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이 1일 보도했다. 이 신문 주말판은 '폭동 회상(Riot Reminiscences)' 제하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지난 91년 서울 거주 외국인들에게 비친 민주화 시위들은 과격 양상이나 전격성 등에서 공포와 흥분이 교차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한 뒤 "10년만에 찾아간 서울은 정치적으로 한층 안정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고 논평했다. 다음은 '한 기자가 회상하는 한국에서의 공포와 흥분의 꼴라쥬' 부제가 달린 전문을 요약한 것이다. 필자인 제이슨 부스(영국) 기자는 한국 경제 전문가로 이 신문에 매주 2-3편의 한국 관련 분석기사를 쓰고 있다. 『어디에선가 삽시간에 수천명의 군중이 쏟아져나와 거리를 메우는 믿겨지지 않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1년 여름 어느날 오후 5시. 서울 퇴계로에 있는 코리아헤럴드(영자신문)사에 재직중이던 나는 편집실 창문을 통해 시위 군중들이 일거에 모여드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 시위대들은 약속 시간이 되자 명동 거리나 지하철역 등 사방으로부터 플래카드와 몽둥이, 화염병 등을 들고 거리로 몰려들었다. 사무직 노동자들의 참여를 고려, 집회 시간을 5시로 정했는데 실제로 '넥타이 부대'도 대거 시위에 합류했다. 플래카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시위대들이 구호를 외치며 전경들이 진치고 있는시청 앞 광장으로 향하자 곧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원했건 원치 않했건 - '민주주의' 등의 대의명분 앞에 쓰러져 갔다. 스무살의 강경대군은 전경의 곤봉에 맞아 숨졌으며 또 다른 학생(이한열군)은 경찰의 최루탄에맞아 희생되는 등 '순교' 행렬은 대규모 시위의 촉매 역할을 했으며 분신 등의 자살로 이어졌다. 특히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학생이 경멸하듯 내뱉은 한 마디를 떠올려 볼 때면지금도 머리털이 곤두서며 모골이 송연해진다. "(노태우 정권의) 정부지도자들을 모조리 없앤 후에나 진정한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해 봄과 여름, 폭력시위들로 얼룩진 한국의 상황은 이렇듯 불안정 국면의 정점에 달해있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이같은 장면들은 '공포와 흥분의꼴라쥬'로 보였다. 그러나 10년후 한국의 시위 상황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모했으며 정국도 안정되고 한층 평화로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을 방문해 보면 한국이 정치적으로성숙해졌음이 명백해진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다지 인기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두차례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잘 이겨내고 '거품'으로 판명된 벤처 열풍의 타격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내후년에 물러나지만 폭력 시위로 하야하는 게 아니라 선거에 의해 물러나는 것이다. 내년 한국의 대선은 아시아에서 가장 덜 폭력적이고 깨끗한 선거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연합뉴스) 홍덕화특파원 duckhwa@yonhapnews.co.kr